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물레 앞에 앉아 흙을 만지다가도 자꾸 손이 멈췄어요. 서른일곱, 도예가예요. 곧 이 사람이랑 같이 살기로 했는데, 막상 날이 다가오니까 겁이 슬금슬금 목 밑까지 차오르더라고요. 연애랑 동거는 다르다는 말이 자꾸 목에 걸렸어요. 그릇 하나 굽는 데도 온도가 안 맞으면 다 갈라지는데, 사람이랑 사람이 한집에서 부대끼는 건 오죽할까 싶었어요. 사주 같은 걸로 사람 속을 어디까지 알겠나 싶으면서도, 같이 살기 전에 뭐라도 미리 알고 싶어서 궁합을 신청했어요 ㅋㅋ 선생님이 '두 분은 애정은 깊은데 생활 습관에서 부딪칠 지점이 뚜렷한 조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특히 한 사람은 정리를 미뤄 두는 쪽이고 한 사람은 그때그때 치우는 성향이라, 그 사소한 게 초반에 제일 큰 싸움거리가 될 수 있다고요. 저 어지르고 그이 깔끔한 거 딱 맞아떨어져서 헛웃음이 났어요. 대체 이걸 어떻게 아셨지 싶었어요. 덕분에 동거 들어가기 전에 집안일 규칙부터 정하고 시작했어요. 미리 싸울 일 하나를 접고 들어가는 기분이라, 이상하게 겁이 좀 사그라들었어요. 동거를 앞두고 제일 무서웠던 건 사실 그이가 아니라 저였어요. 제 어지르는 습관 때문에 그이가 지쳐서 정 떨어지면 어쩌나, 그 걱정을 혼자 키우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 다른 점이 헤어질 이유가 아니라 미리 규칙만 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하시니까, 겁내던 게 좀 우스워졌어요. 그릇도 온도만 맞춰 주면 갈라지지 않고 단단하게 구워지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맞춰 구우면 되는 거였어요. 짐을 합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좋은 사람인 건 알면서도 왜 이렇게 겁이 나나 싶어 스스로가 답답했어요. 근데 그 겁의 정체가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그냥 생활 방식이 다른 데서 오는 마찰이라는 걸 짚어 주시니까, 겁이 구체적인 할 일로 바뀌더라고요. 무서운 건 정체를 모를 때지, 이름을 알고 나면 그냥 준비하면 되는 문제가 되잖아요. 아쉬운 건 나중에 다시 보려고 했을 때 재열람으로 들어가는 길이 헷갈렸어요. 어느 링크로 눌러야 하는지 한참을 헤맸네요. 그것만 빼면 만족합니다. 4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