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직장 동료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마흔둘이나 먹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같은 팀은 아닌데 프로젝트로 자주 엮이는 사람이 있어요. 회의 때 눈이 자주 마주치고, 커피 타임엔 은근히 제 옆자리에 앉고. 이게 그냥 사람이 좋아서인지 저한테만 기류가 있는 건지 애매한데, 사내에서 잘못 움직였다간 회사를 못 다니는 나이라 함부로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이 나이에 짝사랑으로 혼자 설레는 것도 웃기고, 착각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창피해서 얼굴을 어떻게 드나 싶고. 여름휴가를 혼자 보내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이런 걸 대체 누구한테 물어봐요. 친구들은 다 애 키우느라 바쁘고, 회사 사람한테는 죽어도 말 못 하고. 마흔에 사내 썸이라고 하면 주책이라 할까 봐 그 마음까지 스스로 눌러왔어요. 그 눌린 마음을 선생님이 먼저 읽으셨는지, 이 나이의 설렘도 충분히 존중받을 감정이라는 말로 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그 한 줄에 왜 그렇게 마음이 놓였는지 몰라요. 솔직히 상담받기 전엔 반쯤 삐딱했어요. 이 나이 먹고 썸 하나 정리 못 해서 사주를 본다는 게 스스로도 좀 한심하게 느껴졌거든요. 사주가 남의 회사 사람 속을 어떻게 아나 싶기도 했고요. 근데 선생님은 상대 얘기보다 제 얘기를 더 정확히 짚었어요. 마흔이 넘으면 설렘조차 사치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감정을 검열하게 되는데, 그게 오히려 다가온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고요. 생각해보면 저는 그 사람이랑 회의가 잡힌 날엔 아침에 옷을 두 번씩 갈아입었어요. 마흔둘에 그러고 있는 제가 우스우면서도, 회의실에서 그 사람이 제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주면 그 장면이 하루 종일 떠올랐고요. 이게 착각인지 진짜인지를 몰라서, 설레는 저 자신이 제일 불안했어요. 핵심 분석은 이거였어요. '상대는 호감은 분명히 있는데 관계를 먼저 주도하는 성향이 아니라, 상대가 문을 살짝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구조'라고요. 그러니 이 사람이 적극적이지 않은 걸 관심 없음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사내라는 특수성 때문에 서로 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조급해하지도 말라고요. 그 말대로 지난주에, 회의 끝나고 커피 한잔하실래요 하고 제가 먼저 가볍게 던져봤어요. 심장은 콩닥거리는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요. 근데 이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마음이 없던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좋다고 답한 순간,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알겠다고 하고는 탕비실에 가서 혼자 크게 숨을 내쉬었어요. 마흔둘이나 먹고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게 웃겼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이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 큰 어른한테도 이런 떨림이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고맙더라고요. 아직 사귀는 것도 뭣도 아니에요. 근데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 요즘 출근길이 안 무서워요. 마흔둘의 설렘은 스무 살의 그것과 달라요. 심장이 뛰는데도 티를 못 내고, 그 감정이 반가우면서도 겁이 나요.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던 마음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 그게 좀 벅차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