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작년 봄에 궁합 상담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그땐 지금 남편이랑 결혼을 앞두고 이 사람이랑 평생 살아도 되나 싶어 봤었는데, 선생님이 짚어주신 게 하나하나 맞아떨어져서 이번엔 완전히 다른 걸로 다시 찾아왔어요 ㅋㅋ. 이번엔 연애도 사람 얘기도 아니고, 제 밥벌이 얘기였어요. 방송작가로 십 년 넘게 일했어요. 이 바닥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는 해본 사람만 알아요. 프로그램 하나 끝나면 몇 달씩 붕 떠서 통장이 마르고, 나이 한 살 먹을 때마다 부를 데는 줄어요. 마흔이 넘으니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자리에서 저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이 제일 무서웠어요. 겉으론 웃으면서 회의하고 대본을 넘기는데, 집에 와서 다음 편성표를 들여다볼 때마다 속이 서늘했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작은 카페든 온라인 쇼핑몰이든 내 걸 하나 차려두고 싶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어요. 근데 언제 벌여야 할지, 지금 질러도 되는 건지 겁이 나서 한 발도 못 떼고 있었어요. 마침 예전 상담 고객은 사주 문답이라는 걸 받을 수 있다길래 신청했어요. 자유 질문을 세 개나 넣을 수 있더라고요. 첫 번째로 창업 시기를 물었어요. 이게 제일 급한 질문이었어요.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는 새벽이면, 지금 안 벌이면 영영 못 벌일 것 같은 조바심이 목을 조였거든요. 선생님이 '내년 하반기까지는 벌여놓은 걸 키우기보다 배우고 준비하는 흐름이라, 큰돈을 묶는 결정은 그 이후가 안전하다'고 하셨어요. 당장 올해 안에 오픈하려던 저한테는 좀 김빠지는 말이었는데,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됐어요. 지금은 제가 조급함에 떠밀려 판단하는 시기라, 이때 벌인 일은 나중에 수습하는 데 더 힘이 든다고요. 실제로 요즘 저는 뭘 봐도 이거다 싶다가 다음 날이면 식는 걸 반복하고 있었거든요. 그 들뜸이 제 진짜 판단이 아니라 그저 시기의 기운이었다는 게, 웃기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ㅋㅋ. 두 번째로는 카페냐 온라인 쇼핑몰이냐, 저한테 뭐가 더 맞는지 물었어요. 선생님이 '사람을 직접 상대하며 기운을 얻는 쪽이 아니라, 혼자 기획하고 판을 짜는 데 힘이 실리는 흐름'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매장에 매여 손님을 응대하는 카페보다, 콘텐츠와 상품을 기획해 굴리는 온라인 쪽이 덜 지치고 오래간다고요. 이건 진짜 저를 정확히 보신 거예요. 저 사람 많은 데 오래 있으면 방전되는 사람이거든요. 촬영장에서도 하루 종일 여러 사람 비위 맞추고 나면, 집에 와서 한동안 아무하고도 말을 섞기 싫었어요. 그런 제가 매일 손님을 응대하는 카페를 로망처럼 품고 있었으니, 그게 얼마나 안 맞는 그림이었나 싶더라고요. 카페 창업이 제 성향이 아니라 그냥 예쁜 그림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세 번째는 지금 다니는 일을 언제까지 붙잡아야 하나였어요. 이건 시기를 콕 집어주셨어요. '지금 일을 갑자기 놓기보다, 내후년 봄까지는 한 발씩 겹쳐 두는 게 맞다'고요. 수입이 뚝 끊기지 않게 방송 일을 줄여가면서 준비를 병행하라는 거였어요. 이게 제가 제일 겁내던 지점이었어요. 일을 놓자니 당장 생활이 막막하고, 안 놓자니 새 일에 발을 못 담그겠고. 매일 그 사이에서 저울질만 하다 하루가 갔거든요. 근데 둘 중 하나를 접으라는 게 아니라 한동안 겹쳐서 천천히 넘어가라는 그림을 그려주시니까, 막막하던 고민에 처음으로 순서가 잡혔어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월별로 택일 캘린더를 정리해 주신 거예요. 봄엔 큰 계약이나 목돈 들어가는 결정을 미루고, 초여름엔 사람을 만나 판을 넓히기 좋고, 가을엔 배운 걸 조용히 정리하기 좋다는 식으로 달마다 결이 다르게 적혀 있었어요. 그동안 언젠가는 해야지 하며 막연하게만 있었는데, 달력에 표시가 딱 되니까 조급함이 오히려 사라졌어요. 급하게 안 해도 되는구나, 내 때가 따로 있구나 싶어서요. 저는 늘 지금 당장 뭐라도 안 하면 뒤처진다는 생각에 쫓겼거든요. 이 나이에 새로 시작하려면 이미 늦은 거 아닌가, 그 초조함이 밤마다 등을 떠밀었어요. 근데 때가 정해져 있다는 걸 아니까, 그 사이의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준비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마흔 넘어 진로를 다시 고민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어요. 남들은 자리를 잡을 나이에 나는 아직도 뭘 할지 헤매나 싶어서요. 근데 선생님이 이걸 이상한 일로 안 보시고 그냥 흐름의 한 구간으로 담담하게 짚어주시니까, 그 부끄러움이 좀 가벼워졌어요. 늦은 게 아니라 순서가 이렇게 온 거구나 싶었어요. 십오만원짜리 프리미엄까지는 아니어도, 이 정도로 방향만 잡아줘도 저한텐 충분했어요. 예전엔 사람 문제로 왔던 선생님한테 이번엔 제 일까지 상의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연애든 일이든 결국 제 흐름을 읽는 건 똑같더라고요. 몇 달 뒤에 창업 자리 알아보다 또 막히면, 아마 세 번째로 찾아올 것 같아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