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결론부터 말할게요. 저 결혼하기로 했어요. 회계사라 그런지 숫자로 안 떨어지는 건 잘 못 믿어요. 남자친구랑 결혼 얘기가 오가는데, 조건도 좋고 사람도 좋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이상하게 마지막 한 발이 안 떼지더라고요. 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확신을 내가 못 믿겠는 이상한 상태였어요. 좋은데 왜 무섭지, 그 물음표를 지우고 싶어서 궁합을 봤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나란히 펼치시더니 제가 입도 뻥끗 안 한 걸 짚으셨어요. '이분은 결정을 앞두면 최악의 경우부터 계산하는 사람이라, 확신이 없어서 망설이는 게 아니라 확신이 서고도 한 번 더 의심하는 구조'라고요. 그게 소름 돋게 저였어요. 감사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돌다리도 두들기다 못해 부숴서 속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됐거든요 ㅋㅋ 그러니까 지금 이 망설임은 이 결혼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그냥 제 기질이 켜진 거라는 거였어요. 두 사람 조합에 대해선 '재물이나 생활을 꾸리는 방향이 놀랄 만큼 같은 쪽을 보고 있어서, 큰 갈등이 나도 결국 같은 결론으로 되돌아오는 조합'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저희가 돈 문제나 집 문제로 얘기하면 처음엔 티격태격해도 늘 같은 지점에 도착하긴 했어요. 그게 우연이 아니라 결이 같아서였다는 걸 짚어주시니까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하나 더 있었어요. 상대가 표현이 서툴러서 무뚝뚝해 보여도 속으로는 저를 굉장히 중요하게 놓는 사람이라고요. 이건 제가 늘 서운해하던 부분이었는데, 선생님이 표현의 양이 아니라 방향을 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좀 멍했어요. 하긴 이 사람은 말은 없어도 제가 몸살로 앓아누운 밤에 죽 끓여서 말없이 옆을 지키던 사람이었거든요. 저는 그동안 다정한 말의 개수만 세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서운했던 게 미움이 아니라, 저 사람 방식으로 이미 받고 있던 걸 제가 여태 못 알아본 거였구나. 그걸 인정하니까 오래 품고 있던 원망 하나가 스르르 조용히 녹더라고요. 그 대목을 읽고 나서 자는 남자친구 얼굴을 한참 봤어요. 이 사람이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저 혼자 최악의 시나리오를 백 개쯤 써놓고 겁먹고 있었더라고요. 제가 야근하면 회사 앞에서 말없이 기다렸다가 붕어빵 한 봉지 사서 손에 쥐여주던 사람이었는데, 저는 그 손에 붕어빵이 들려 있는 건 안 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한다는 것만 몇 년째 세고 앉아 있었던 거예요. 이상하게 그 순간 회계 마감 때 숫자가 안 맞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원인을 찾아내던 제 버릇이 떠올랐어요. 저는 사람 마음도 그렇게 대차대조표처럼 딱 떨어져야 안심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근데 마음은 원래 잔액이 딱 안 맞는 거더라고요. 다 세어지지도 않고, 세려고 들면 오히려 놓치는 거였어요. 그걸 인정하는 데 꼬박 서른두 해가 걸렸어요. 그 결과지 읽고 딱 이틀 뒤에 프러포즈를 받았어요. 타이밍이 웃겨서 혼자 웃었어요 ㅋㅋ 사주가 결혼을 시켜준 건 당연히 아니에요. 근데 내가 나를 못 믿어서 자꾸 미루던 걸 멈춰준 건 확실해요. 이번엔 돌다리를 두들겨보지 않고 그냥 한번 건너보려고요. 잘 살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