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벽을 치게 돼요. 38살이고 증권사에서 일하는데, 전 남자친구와 1년 전에 헤어졌어요. 5년을 만났는데 결국 결혼까지 못 갔어요. 제가 결혼을 원했는데 그 사람은 끝까지 망설였거든요. 처음 2년은 괜찮았어요. 3년 차부터 제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그 사람은 아직이라고 했고 저는 기다렸어요. 4년 차에도 같은 말이 반복됐고 5년 차에 결국 제가 나왔어요. 헤어진 후에 새로운 사람을 몇 명 만나봤는데 다 오래 못 갔어요. 두세 번 만나면 '이 사람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벽을 치게 돼요. 상대가 잘해줘도 믿어지지 않고 또 같은 결말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먼저 와요.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이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제 머릿속에서는 '이 사람도 결국 결혼은 안 하겠지'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돌아가요. 그러다 보니 상대한테도 벽이 느껴지겠죠. 자연스럽게 다음 만남은 없어지고요. 이게 제 문제인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재회상담을 받았어요. 전 남자친구한테 돌아가고 싶다기보다 이전 관계가 지금 저한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이전 관계의 미완결 감정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방해하는 구조가 사주에서 보인다'고 하셨어요. 전 남자친구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결혼까지 가지 못했다는 실패감'이 남아 있는 거래요.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는데 결과가 없었다는 느낌. 그 실패감이 새 사람을 만날 때마다 '또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공포로 변환된다고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실패가 무서운 거라는 분석이 정확했어요. '5년을 함께한 건 실패가 아니에요. 그 시간 동안 당신이 배운 게 있고 그게 다음 관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자산이에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맞는지, 어디서 타협할 수 있는지, 어디서 양보할 수 없는지를 배운 시간이에요.'라는 말에 많이 위로받았어요.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말이 필요했어요. 전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 정리가 끝나는 시점이 올 가을쯤이라고 하셨어요. 그때 이후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지금과는 다른 반응이 올 거라고요. 벽을 치는 게 아니라 열어볼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요. 지금은 일부러 소개팅을 멈추고 저한테 집중하고 있어요. 퇴근하고 수영을 시작했어요. 물속에 있으면 머리가 비워지더라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감정을 먼저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수영하면서 처음으로 제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서른여덟이 되도록 나를 위한 운동을 한 적이 없었더라고요.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한테 맞추느라 바빴어요. 가을까지 기다려보겠습니다. 그때 되면 제가 달라져 있을 것 같아요. 결과지에서 '당신이 새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그때는 벽을 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말이 있었어요. 지금은 아직 그 상태가 아닌 거예요. 그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래요. 인정하고 나니까 오히려 편해졌어요. 지금 당장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졌거든요. 서른여덟이라는 나이가 조급하게 만들었는데 결과지 읽고 나서 좀 내려놓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