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만난 지 딱 3년하고 두 달째 되던 날,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 문득 이 사람이랑 나눌 얘기가 다 떨어졌다는 걸 알았어요. 싸운 것도 아닌데 둘 다 국밥에 고개 박고 각자 핸드폰만 보고 있더라고요. 이게 편한 건지 식은 건지 구분이 안 됐어요. 이 나이에 3년이면 헤어지고 새로 시작하는 것도 겁나고, 그렇다고 이대로 정으로만 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딱 그 중간에서 애매하게 굳어 있었어요. 겉으로는 안정된 커플인 척 잘 지내는데 속은 슬슬 비어가는, 그 어중간함이 제일 힘들었어요. 사주가 이런 미묘한 걸 잡아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궁합을 봤어요. 권태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데이트 장소를 정하는데 서로 아무 데나 상관없다는 말만 주고받고, 사진첩을 넘겨보다 최근에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석 달 전이라는 걸 발견하고, 그런 사소한 데서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겉으로는 안 싸우고 잘 지내니까 문제없어 보이는데, 그 무난함이 저는 제일 무서웠어요. 싸울 기운도 없이 조용히 식어가는 것 같아서요. 솔직히 이런 걸 상담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었어요. 3년이나 본 사람 마음을 사주가 어떻게 아냐고, 결국 다 좋게좋게 넘어가라는 소리 아니겠냐고요. 근데 선생님은 좋게 넘어가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흐름을 보시더니 웃기게도 상대가 아니라 제 연애 버릇부터 맞히셨어요. '이분은 관계가 안정되면 그 안정을 지루함으로 착각하는 습관이 있어서, 잘 지내다가도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내는 구조'라고요. 어떻게 아셨지 싶었어요 ㅋㅋ 저 진짜 전 연애들에서도 편해질 때쯤이면 꼭 딴생각을 했거든요.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제 권태 스위치가 주기적으로 켜지는 거였어요. 두 사람 조합에 대해서는 지금이 세 번째 고비인데, 이걸 넘기면 관계의 결이 한 단계 깊어지는 시기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 권태기가 올여름 안에 자연스럽게 풀릴 흐름이라고 짚어주셨고요. 제일 오래 남은 건 이 한마디였어요. 안정이 지겨운 게 아니라, 안정을 누리는 법을 제가 안 배운 거라고. 저는 그동안 설렘만 사랑인 줄 알았지, 편안함도 사랑의 한 얼굴이라는 걸 몰랐던 거예요. 심심한 게 아니라 안전한 거였는데, 저는 그 안전을 자꾸 권태라고 오해하고 스스로 흔들어댄 거고요. 늘 관계가 편해질 때쯤 제가 먼저 균열을 냈던 걸 떠올리면, 헤어졌던 사람들한테 좀 미안해지기까지 했어요. 이 사람이 문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더라고요. 매번 잘 지내다가 스스로 지루하다고 판정을 내리고 도망친 게 저였어요. 그걸 알고 나니 이번엔 도망치기 전에 한 번은 멈춰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진짜로 지난주에 남자친구가 갑자기 여행 가자고 하더라고요. 먼저 뭘 하자고 한 게 오랜만이라 좀 놀랐어요. 선생님 말대로 여름이 되니까 뭔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권태가 병이 아니라 제 습관이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이 상담값은 했어요. 이번엔 제가 먼저 권태 스위치를 끄지 않고, 다가올 그 여행을 기다려보려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