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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자작나무532026.09.27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먼저 재회 상담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5만원짜리 그 리포트만으로도 헤어진 이유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됐는데, 다 읽고 나니 더 근본적인 게 궁금해졌어요. 왜 나는 매번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걸까. 이 사람뿐 아니라 그전 연애들도 비슷한 지점에서 무너졌거든요. 그래서 프리미엄 심층 분석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임상병리 일을 하며 검사 수치 하나로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읽는 게 직업인데, 정작 제 마음속은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더라고요. 선생님이 '본인은 상대에게 헌신하다가 어느 순간 나를 다 소진했다고 느끼면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는 흐름'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늘 상대가 떠났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제가 지쳐서 먼저 마음의 셔터를 내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 대목에서 지난 연애들이 한 줄로 꿰어졌어요. 나만 버려진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문을 닫고 있었구나 싶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어요. 이 사람과 다시 만날지는 아직 몰라요. 그런데 이번엔 그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누굴 만나든 제가 같은 자리에서 또 셔터를 내리지 않는 게 먼저니까요. 기본 상담이 이번 이별을 이해하게 해줬다면, 프리미엄은 다음 사랑을 다르게 할 열쇠를 쥐여준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