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카톡 답장이 한 시간 걸리던 게 세 시간이 되고, 세 시간이 하루가 되고, 어느 날부터는 읽씹이 기본이 됐어요. 크게 싸운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물이 서서히 식듯이 관계가 식어갔고, 마지막엔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조차 없이 흐지부지 끝났어요. 저는 그게 더 아팠어요. 차라리 이유라도 있었으면 붙잡고 원망이라도 했을 텐데요. 스물넷이면 아직 어리다고들 하지만, 저한테는 그 사람이 처음으로 진지했던 연애였어요. 끝이 이렇게 애매하니까 매듭이 안 지어져서 몇 달을 붕 뜬 채로 살았어요. 친구들한테 털어놔도 돌아오는 건 그냥 잊어버리라는 말뿐이라 더 외로웠고요. 잊으라는 말이 제일 잔인하더라고요. 이유를 알아야 잊든 말든 할 텐데요. 그 몇 달 동안 저는 겉으로는 멀쩡히 학교도 가고 알바도 했어요. 근데 지하철에서 그 사람이 자주 쓰던 향수 냄새가 스치면, 내려야 할 역을 두 정거장씩 지나치곤 했어요. 코가 먼저 기억하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어요. 둘이 나눠 듣던 이어폰 한 짝은 아직도 제 가방 안주머니에 있었고, 그걸 꺼낼 용기도 버릴 용기도 없어서 그냥 못 본 척했어요. 매듭이 없다는 건, 이렇게 사방에 끊어진 실이 널려 있는데 어디부터 묶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더라고요. 재회 상담을 신청하면서도 반쯤은 의심했어요. 답장도 안 하는 사람 속을 사주로 무슨 수로 알아, 그냥 좋은 말로 희망 고문이나 하는 거 아냐 싶었거든요. 5만 원이 아깝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솔직히 했고요. 그런데 결과지를 읽으면서 그 의심이 하나씩 접혔어요. 선생님이 그 사람 구조를 보시더니,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걸 극도로 버거워해서 문제가 생기면 대화 대신 잠수를 택하는 쪽이라고 하셨어요. 미워서 답을 안 한 게 아니라,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도망친 거라고요. 제가 왜 읽고도 답을 안 할까, 그 물음 하나로 몇 달을 앓았는데, 그 한 문단이 답을 줬어요. 더 놀란 건 제 얘기였어요. 제가 상대의 침묵을 나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이고 점점 더 매달리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걸, 제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짚으시더라고요. 그 매달림이 오히려 상대의 잠수를 더 깊게 만드는 악순환이었다고요. 읽는데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딱 제가 한 짓이었거든요. 아무도 안 본 줄 알았던 제 행동을 정면으로 들킨 기분이었어요. 그다음이 핵심이었어요. 선생님은 무작정 기다리라거나 무작정 연락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무렵에 그 사람 마음에 여유가 한 번 생기는데, 그전에는 어떤 연락도 잠수를 부추길 뿐이니 그때까지는 오롯이 제 일상을 채우는 데만 쓰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시기가 오면 과거를 묻지 말고 아주 가벼운 안부 하나로 시작하라고, 예시 문장까지 적어주셨어요. 반신반의하며 그 방향대로 저를 다잡았어요. 당장 연락하고 싶은 밤마다 그 예시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손을 멈췄고요. 그런데 정말로 그맘때쯤, 그 사람이 먼저 짧은 안부를 보내왔어요. 선생님이 적어준 톤이랑 거의 비슷한 결의 메시지였어요. 지금은 조심스럽게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어요. 재회라고 크게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흐지부지 끊겼던 매듭을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천천히 다시 풀고 있어요. 사실 그 몇 주를 기다리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당장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랑, 지금 하면 다 망친다는 선생님 말 사이에서 매일 줄다리기를 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그 사람 성향을 설명한 문단을 다시 읽었어요. 지금 내가 보내는 메시지가 상대를 더 도망치게 만든다는 그 문장이, 손가락이 카톡으로 향할 때마다 저를 붙잡아줬어요. 이별을 겪어본 분은 아실 거예요. 제일 무서운 건 상대의 침묵이 아니라, 그 침묵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나 자신이라는 걸요. 저는 그 몇 주 동안, 매달리는 대신 저를 다잡는 법을 처음 배웠어요. 그게 재회보다 더 큰 수확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먼저 안부를 보내온 날, 저는 답장을 바로 하지 않고 한참을 그 메시지만 들여다봤어요. 반가움보다 먼저 온 건, 아 정말 그 시기가 왔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였어요. 몇 주를 참은 게 헛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일 초 만에 답장하고 또 열 줄을 쏟아냈을 텐데, 이번엔 선생님이 적어준 톤을 떠올리면서 딱 한 줄로 짧게 답했어요. 그렇게 답을 보내고 나서, 처음으로 이 관계에서 제가 휘둘리는 쪽이 아니라 저를 지키는 쪽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그 결과지가 없었으면 저는 아마 매달리다 지쳐서 이 사람을 영영 밀어냈을 거예요. 스물넷의 저에게 방향을 쥐여준 5만 원이었어요. 그 몇 주를 버틴 게 지금 이 조심스러운 대화의 시작이 됐다고 생각하면, 그 돈은 이상하게 하나도 아깝지가 않아요. 재회가 될지 안 될지는 아직 저도 몰라요. 다만 적어도 저는, 상대의 침묵 앞에서 주저앉기만 하던 사람에서 조금은 자란 것 같아요. 진심으로 5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