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손님 손톱에 젤을 올리다가도 자꾸 핸드폰을 흘끔거렸어요. 혹시 연락 왔나 하고요. 잠수 이별을 당하고 딱 6주째였거든요 ㅋㅋ 웃프죠. 스물넷에 무슨 대단한 연애냐 하겠지만, 저한테는 진심이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카톡 한 줄 없이 사라진 사람 때문에, 새벽마다 마지막 대화창을 열어서 숫자 1이 사라졌나 확인하는 게 하루의 마지막 일과가 됐어요. 답장 없는 채팅방에 대고 잘 지내냐고 혼잣말하는 제가 좀 한심하기도 했고요. 그 방에 대고 말을 걸면 걸수록 더 외로워지는데도 손이 자꾸 그리로 갔어요. 친구들은 그런 놈 그냥 잊으라는데, 저는 잊기 전에 이유라도 알고 싶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질 수가 있지, 그 물음이 6주 내내 목에 걸린 가시 같았어요. 밥을 먹어도 안 넘어가고, 손님이랑 웃으며 얘기하다가도 속으로는 계속 그 생각이었어요. 웃는 얼굴로 컬러를 고르고 있는데 마음은 딴 데서 얼어 있는 그 이중생활이, 6주쯤 되니까 저를 갉아먹더라고요. 그래서 재회 상담을 신청했어요. 사실 처음엔 얼굴도 못 본 남 마음을 무슨 수로 알겠나 싶었어요. 그냥 위로나 받자는 마음이었죠. 근데 선생님이 그 사람 구조를 보시더니, 잠수는 마음이 떠나서가 아니라 상황을 감당 못 할 때 그대로 얼어붙는 유형이라 나오는 행동이라고 하셨어요. 미안함이 커질수록 오히려 연락을 더 못 하게 되는 사람이라고요. 제가 왜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을까, 그 물음으로 6주를 앓았는데, 그 한 문단에서 매듭이 툭 풀렸어요. 나쁜 놈이라 사라진 게 아니라 겁이 나서 도망친 거였구나 하고요.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지금 제가 먼저 몰아붙이면 그 사람은 더 깊이 숨는다고, 겨울로 넘어갈 즈음 스스로 미안함을 정리하고 나올 자리가 생기니 그때까지는 저 자신을 챙기는 데 시간을 쓰라고 하셨어요. 나중에 연락하게 되면 첫 마디를 뭐라고 떼면 좋을지까지 콕 집어주셨고요. 저는 그동안 뭐라도 해야 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아서 안달이었는데,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최선일 수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어요. 조급함이 죄가 아니라, 방향 없는 조급함이 문제였던 거예요. 손톱에 예쁜 색을 입히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제 하루는 온통 잿빛이었는데, 그 잿빛이 조금은 옅어진 기분이에요. 손끝은 알록달록한데 마음만 회색이던 나날이 좀 억울했거든요. 남의 손은 그렇게 예쁘게 꾸며주면서 제 마음은 왜 이렇게 방치했나 싶어서, 그 대비가 유난히 서러웠어요. 이제는 제 하루에도 색을 조금 입혀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뒤로 확인 강박이 많이 줄었어요 ㅋㅋ 적어도 숫자 1을 백 번씩 새로고침하지는 않게 됐거든요. 대신 그 시간에 손님 예약을 더 받고, 미뤄뒀던 디자인 연습도 하고요. 겨울까지 뭘 하면서 저를 채워둬야 하는지 아니까, 하루가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저를 갉아먹던 그 6주에서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이 상담은 값을 했어요. 저처럼 답장 없는 채팅방만 들여다보는 분이 있다면, 그 방에서 잠깐 눈을 떼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5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