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연애를 시작한 지 반년쯤 되면 저는 늘 같은 지점에서 무너져요. 벌써 세 번째, 똑같은 자리에서 관계를 놓치고 나서야 이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서른둘, 공무원이에요. 일에는 꽤 야무지다는 소리를 듣는데 이상하게 연애와 일을 동시에 잘 굴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일이 바빠지면 연애가 뒷전이 되고, 연애에 마음을 쏟으면 업무에서 실수가 나요. 그러다 죄책감에 둘 중 하나를 놓게 되는데, 늘 놓이는 쪽은 연애였어요. 그렇게 사람을 세 번 떠나보냈어요. 세 번 다, 저를 참 좋아해 준 사람들이었는데. 가장 최근 사람은 제가 승진 준비로 몇 달을 매달릴 때 자기는 뒷전이 된 것 같다며 조용히 떠났어요. 붙잡을 염치가 없었어요. 그 사람 말이 다 맞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죠, 일에 그렇게 매달리던 그 몇 달 동안 저는 하나도 안 행복했어요. 사랑을 미뤄둔 죄책감 때문에 일에서도 온전히 웃질 못했거든요. 둘 중 하나를 죽여서 지킨 나머지 하나마저, 사실은 반쪽짜리였던 거예요. 프리미엄을 신청한 건 이 패턴의 뿌리를 제대로 보고 싶어서였어요. 선생님이 제 구조를 짚으시는데, 저는 두 가지에 동시에 마음을 나눠 쓰면 둘 다 부실해질 거라는 불안이 깊어서 차라리 하나에 몰아넣어 안전하게 만들려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일과 사랑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겪어봐야 한다고요. 제가 왜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붙였는지, 왜 늘 하나를 죽여야만 마음이 놓였는지가 그제야 설명됐어요.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났던 건, 야근하고 돌아온 새벽에 연락 한 통 못 한 게 미안해서 혼자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울던 밤들이 떠올라서였어요. 그때의 저는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줄로만 알았거든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마음을 다 못 주는 제가 이기적이고 모자란 인간 같았어요. 그게 부족함이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서툰 방식이었다는 걸, 이 리포트가 처음으로 말해줬어요. 누가 나 대신 내 마음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경험이 그렇게 큰 위로일 줄 몰랐어요. 읽다가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멈췄어요. 당신은 사랑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자기 삶을 함께 지키는 법을 아직 못 배운 사람일 뿐이라는 대목이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봤어요. 세 번의 이별이 제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배우면 되는 서툶이었다는 게,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어요. 세 번의 이별이 다 제 탓 같아 스스로를 오래 미워했어요. 사랑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또 누굴 만나나 싶었고요. 그런데 리포트는 저를 탓하지 않았어요. 다만 서툴렀을 뿐이라고, 이제부터 배우면 된다고 했어요. 그 담담한 문장 앞에서 저는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누가 저한테 그렇게 말해준 게 처음이었거든요. 당장 무슨 답을 얻은 건 아니에요. 다만 다음 연애에서는 일과 사랑 중 하나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저를 그렇게 몰아세우던 죄책감의 정체를 알았으니, 다음엔 조금 덜 미안해하며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처럼 늘 둘 사이에서 하나를 포기해 온 분이라면, 이 리포트가 그 무거운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