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인스타 DM 하나로 시작된 썸이었어요. 오래전부터 서로 게시물에 좋아요만 조용히 누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제 여행 사진을 보고 여기 어디냐고 물어온 게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며칠 대화가 이어지는데,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한테 이렇게 설레도 되나 싶어서 덜컥 겁이 났어요. 서른다섯이나 됐는데 DM으로 만난 사람 답장을 밤새 기다리는 제가 좀 우스웠어요. 알림 하나에 몸이 반응하는 게 현실감이 없었거든요. 이게 진짜 감정인지 화면 속 환상인지 저부터가 헷갈렸어요. 답장이 늦어지는 날엔 괜히 밥도 대충 넘기고, 폰을 엎어뒀다가 오 분도 안 돼서 다시 뒤집어 확인하고. 그 사람 프로필을 들여다보다 잠드는 밤이 늘었어요. 이 리뷰 읽는 분 중에도 온라인에서 시작된 마음 하나 붙잡고 뒤척인 분, 분명 있을 거예요. 그 며칠은 하루가 그 사람 답장에 통째로 매여 있었어요. 아침에 눈뜨면 밤사이 온 톡부터 확인하고, 답이 없으면 내가 어제 무슨 실수를 했나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하루를 통째로 내준 게 스스로도 어이없었어요. 그러면서도 그 알림 하나가 그날의 날씨를 정했어요. 제가 제일 겁냈던 건 이거였어요. 글이라서, 화면이라서 이 사람이 쉽게 다정한 척하는 건 아닐까. 막상 만나면 온라인의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어색한 침묵만 흐르는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이 자꾸 저를 붙잡아서, 답장을 보내기 전에 열 번씩 고쳐 썼어요. 제일 겁내던 걸 선생님이 정확히 짚어서 풀어주니까, 혼자 쌓아 올린 최악의 시나리오가 힘을 잃었어요. 사실 저는 만나서 실망할까 봐가 아니라, 이 좋은 감정이 화면을 끄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질까 봐 겁냈던 거였더라고요. 온라인의 다정함이 가짜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마음을 여는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어요. 사람마다 마음의 문이 다른 자리에 달려 있다는 걸, 저는 그때 처음 생각해봤어요. 선생님이 상대 기운을 보시더니 '이 사람은 글로 마음을 여는 게 훨씬 편한 유형이라, DM으로 이렇게 길게 대화가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호감의 표현'이라고 하셨어요. 직접 만나면 오히려 말수가 줄어드는 사람이니, 온라인에서의 이 다정함을 가짜라고 의심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이 관계는 화면 밖으로 한 발만 나오는 순간 급격히 진해지는 흐름이라, 곧 만나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시기라고 하셨어요. 그 말대로였어요. 지난 주말에 그 사람이 먼저, 이제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다는 그 짧은 한 문장을 대체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몰라요. 소리 내서 한 번 읽어보기까지 했어요. 다음 주에 드디어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만나기로 했어요. 온라인의 설렘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선생님이 먼저 확인해준 덕에, 겁내지 않고 그 손을 잡을 수 있게 됐어요. 그 손을 잡으러 화면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게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 며칠 밤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혼자 뒤척였던 게 헛것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