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가게 마감하고 남은 꽃을 정리하다가, 시든 꽃 버리는 통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어요. 얘도 한때는 누구보다 예뻤을 텐데 싶어서요 ㅋㅋ 그날 밤에 재회 상담을 신청했어요. 스물셋이고 작은 꽃집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해요. 이 사람이랑은 이 년을 만났어요. 사이가 나빠서 헤어진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너무 좋아서 문제였어요. 어느 날부터 결혼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얘기만 꺼내면 이 사람 표정이 눈에 띄게 굳더라고요. 저는 그게 좋아하면 당연히 밟는 다음 계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한테는 그게 숨이 막히는 압박이었나 봐요. 결국 '나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어요. 이 사람이랑은 참 사소한 걸로 행복한 커플이었어요. 퇴근하면 제가 가게에서 못 판 꽃 몇 송이를 챙겨 갔고, 이 사람은 그걸 좁은 자취방 유리컵에 아무렇게나 꽂아두고는 예쁘다고 좋아했어요. 그 유리컵이 아직 저희 집에 있어요. 헤어지고도 차마 못 버렸어요. 그 컵을 볼 때마다 손이 멈췄어요. 버리자니 그 사람을 통째로 버리는 것 같고, 두자니 매일 그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고. 결국 싱크대 제일 안쪽에 엎어두는 걸로 타협했어요. 안 보이는 데 두면 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종일 신경이 그쪽에 가 있더라고요. 헤어지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건, 제가 대체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못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사람이랑 같이 앞날을 그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사람을 밀어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요. 밤마다 우리가 나눈 대화를 처음부터 되감아 봤어요. 어디서부터 어긋난 건지 찾고 싶어서요. 근데 아무리 돌려봐도 딱히 잘못한 장면이 안 나오니까 더 미치겠더라고요. 며칠을 제대로 못 자서 아침마다 눈이 뻑뻑한 채로 가게 문을 열었어요. 그 사람이 떠나던 날, 카페에서 커피가 다 식도록 둘 다 아무 말이 없었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뭐라도 붙잡았어야 했나, 그 장면을 그 뒤로 몇 번이나 다시 돌려봤는지 몰라요. 손은 자꾸 그 사람 번호 위에서 멈췄어요. 눌렀다 지웠다, 눌렀다 지웠다.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면서요. 그 커피잔 두 개가 아직도 눈에 선해요. 사주로 이런 걸 알겠나 싶었어요. 헤어진 사람 속을 무슨 수로 읽나요. 그냥 좋은 말 몇 줄 써주고 기다려보라고 하겠거니 했어요. 근데 리포트를 받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선생님이 제가 자세히 쓰지도 않은 부분을 콕 짚으셨거든요. '두 분이 헤어진 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은 미래를 약속받아야 사랑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이 흔들리지 않아야 사랑이라 느끼는 구조'라고요. 저는 미래를 그려야 안심하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미래를 못 박는 순간 오늘이 무거워지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둘 다 진심으로 사랑한 건데, 그 사랑을 담는 그릇 모양이 서로 달랐던 것뿐이었어요. 이 말이 왜 그렇게 위로가 됐냐면요. 저는 그동안 제가 너무 들이대서 이 사람이 도망갔다고, 다 제 탓이라고 저를 몰아세웠거든요. 근데 그게 제 잘못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가 달라서 생긴 오해였다니까, 몇 달을 어깨에 얹고 다니던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졌어요. 제가 잘못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냥 서로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그 한 줄이요. 사실 그 며칠은 손님한테 축하 꽃다발을 만들어 드리면서도 속으로는 내내 그 생각뿐이었어요. 남의 경사를 화사하게 포장하는데 정작 제 마음속은 장례식장 같았거든요. 리본을 묶는 손끝은 웃고 있는데 가슴은 텅 빈, 그런 이상한 며칠이었어요. 그런 상태로 리포트를 몇 번씩 다시 붙잡고 있으니까 그 문장 하나하나가 더 깊이 박혔던 것 같아요. 어느 대목에선 저도 모르게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있더라고요. 텅 빈 가게에 제 목소리만 나지막이 울렸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이 사람 흐름상 언제쯤 그 압박에서 벗어나 다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지 시기를 짚어주셨어요. 그때까지는 연락으로 미래 얘기를 절대 먼저 꺼내지 말고, 그냥 잘 지낸다는 가벼운 신호만 주라고 하셨어요. 지금 재회를 조르면 이 사람은 또 그 무거움부터 떠올릴 거라고요. 그 방향을 알고 나니까, 뭘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게 조금 가라앉았어요. 지금은 조급하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면서, 저부터 다시 저답게 지내보려고 해요. 가게 일에 마음을 더 붙이고, 미뤄뒀던 꽃꽂이 수업도 다시 나가기 시작했어요. 이상하게 저를 채우는 데 집중하니까 그 조급함이 조금씩 옅어지더라고요. 꽃도 한 번 시들었다가 다시 피어나잖아요 ㅋㅋ 저도 지금은 그런 시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씩씩해진 건 아니에요. 여전히 가게에 붉은 장미가 들어오는 날이면 그 사람이 좋아하던 꽃이라 손이 잠깐 느려져요. 다 나은 척은 못 하겠어요. 그냥 아픈 걸 아픈 채로 안고, 그 위에 제 하루를 조금씩 다시 쌓아가는 중이에요. 한 가지 아쉬운 건, 리포트를 받기까지의 며칠이 저한테는 정말 더뎠어요. 답을 빨리 보고 싶어서 하루가 일주일처럼 길었거든요. 그 시간만 조금 짧았어도 5점이었을 텐데. 그래도 받고 나서는 몇 번이나 다시 읽었어요. 답도 모른 채 헤매던 그 밤들에 비하면, 방향이라도 손에 쥔 지금이 훨씬 낫거든요. 4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