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독서 모임이 끝나고 다들 흩어진 자리에, 그 사람이 제 책을 대신 챙겨 들고 서 있었어요. 별것 아닌 그 장면이 며칠을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도서관에서 조용히 일하는 사람이라, 저는 감정 표현에 서툴러요. 그래서 이 사람이 저한테 관심이 있는 건지 원래 남한테 다정한 건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됐어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혼자 마음을 접었다 폈다만 반복했고요. 사실 저는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놓친 적이 있어요. 조용한 호감을 못 알아보고 뒤늦게 후회한 일이요. 그때 조금만 더 눈여겨봤다면 달라졌을까, 그런 자책이 오래 남아서 이번엔 헛짚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썸 상담을 받았어요. 그 사람이 챙겨준 책을 집에 와서 다시 펼쳐 봤어요. 제가 읽다 접어둔 페이지에, 그 사람이 얇은 메모지를 살며시 끼워둔 거예요. 이런 걸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닌데, 저는 그동안 이 사소한 것들을 다 그저 예의로만 넘겼더라고요. 선생님이 그 사람 기운을 보시더니, 표현이 적은 대신 행동으로 마음을 보이는 사람이라 사소한 챙김 하나하나가 그에겐 큰 신호라고 하셨어요. 말로 확인받으려 하지 말고 그 행동의 결을 읽으라고요. 다가갈 시기도 이번 가을이 순하다고 짚어주셨고요. 제가 그동안 큰 고백이나 뜨거운 말만 애정으로 알고, 조용히 건네는 신호들은 다 흘려보냈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요란한 위로는 없었어요. 화려한 말 대신, 제가 헛짚고 있던 지점을 담담하게 되짚어 주는 방식이 오히려 저한테는 더 믿음이 갔어요. 큰 소리로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만 찾다가, 조용히 곁을 지키는 마음은 한 번도 제대로 세어본 적이 없었더라고요. 이제는 그 조용한 신호들을 하나씩 읽어보려 해요. 조급함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방식대로 천천히 다가가 보려고요. 이번엔 놓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거든요. 조용한 사람의 마음은 조용히 읽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