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주재원으로 나간 그 사람과의 시차 때문에 저는 늘 새벽에 깨어 휴대폰부터 확인했어요. 반도체 라인 일이 밤낮없이 돌아가다 보니 저도 정신없이 지냈고, 우리는 크게 싸운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줄었고 결국 흐지부지 멀어졌어요. 서른여덟에 맞은 이런 이별이 제일 허무하더라고요. 바람이 난 것도, 크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니고 그냥 거리에 서서히 진 거니까요. 미워할 대상이 없으니 원망도 못 하고, 그저 이게 정말 끝인지 아니면 잠시 멈춘 것뿐인지 그 하나가 밤마다 저를 붙들었어요. 이대로 영영 남처럼 살아야 하나 싶으면 손끝이 다 식었어요. 둘이 자주 가던 국숫집 앞을 지나다 저도 모르게 발이 멈춘 날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늘 곱빼기를 시켰는데, 그 사소한 습관 하나가 왜 그렇게 사무치던지요. 헤어졌다는 실감은 큰 사건이 아니라 이런 작은 자리에서 자꾸 새로 밀려왔어요. 재회 상담을 받은 것도 그 답을 듣고 싶어서였어요. 두 사람 사주를 나란히 놓고 선생님은, 두 분은 감정이 어긋난 게 아니라 물리적 거리에 밀려난 것뿐이라 접점만 생기면 다시 이어질 여지가 크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가을 무렵 그쪽에서 먼저 소식을 전할 흐름이라고 짚으셨고요. 마음이 식은 이별과 상황에 밀린 이별은 다르다는 그 말이, 오래 저를 눌러온 무게를 조금 덜어줬어요. 제가 사랑을 못 지킨 게 아니라 거리가 우리를 갈라놓은 거라는 말에, 스스로를 탓하던 마음도 한 겹 풀렸어요. 정말 지난주에 그 사람이 명절 잘 보내라며 사진 한 장을 보냈어요. 별것 아닌 메시지인데 액정을 든 손이 떨렸어요. 선생님 말대로 반가움은 티 내되 매달리진 않으면서 담백하게 답했어요.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멈춰 있던 것이 다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느낌이에요. 그거 하나로 요즘은 밤에 깨도 예전만큼 무섭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