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추석에 큰집 내려갔더니 마흔 넘어서 뭐 하고 사냐는 소리를 세 시간 동안 들었습니다. 성우 준비한다니까 다들 표정이 묘하더군요. 밥상 앞에서 웃으며 넘겼지만,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창밖만 봤습니다. 그 밤에 홧김에 상담을 하나 신청했어요. 내 인생이 이대로 괜찮은 건지, 남한테라도 묻고 싶었나 봅니다. 사실 저는 제일 미운 게 저 자신이었어요. 진작 접었어야 했나, 그때 다른 길로 갔어야 했나, 지난 선택들을 밤마다 되감기하며 저를 몰아세웠거든요. 동기들은 벌써 광고 목소리로 나오는데 나는 아직 녹음 부스 앞에서 발성 연습이나 하고 있나 싶으면, 연습실 거울 속의 제가 참 초라해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지금은 성과가 밖으로 드러나는 시기가 아니라, 안에서 실력이 여무는 구간이라 조급함이 가장 큰 적'이라고 하셨어요. 매일 남들과 저를 견주며 초조해하던 걸 정확히 짚으신 겁니다. 땅속에서 뿌리가 자라는 동안은 위에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말씀에, 조급해하던 마음이 좀 머쓱해졌어요. 남들 눈에 안 보인다고 안 자라는 게 아니라는 말이, 큰집에서 들은 어떤 잔소리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사실 저는 남한테 인정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저 자신한테 이대로 가도 된다는 허락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걸 큰집 어른들한테서 못 받으니 밖에서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거고요. 명절마다 주눅 들던 사람인데, 이번엔 좀 덜 흔들릴 것 같습니다. 리포트 하나 받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굽었던 등이 조금 펴졌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