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재혼이라는 말을 제 입으로 소리 내어 보는 데만 몇 달이 걸렸어요. 한 번 데인 자리라, 두 번째는 시작하기 전에 확인부터 하고 싶었거든요. 서른이에요. 이전 결혼이 남긴 흉이 아직 마음 어딘가에 그대로 있어서, 이번엔 감정 하나만 믿고 밀어붙이기가 겁이 났어요. 잃을 게 너무 많은 나이잖아요. 주말에 이 사람이랑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도, 수저를 든 손이 문득 멈추곤 했어요. 이 밥상을 다시 차렸다가 또 엎으면 그땐 정말 못 일어날 것 같아서요. 이 사람은 제가 이전 결혼 얘기를 꺼낼 때마다 재촉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었는데, 그 다정함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더 무서웠어요. 좋은 사람일수록 잃었을 때 더 아플 테니까요. 그 두려움이 뭔지 저도 오래 이름을 못 붙였어요. 이 사람이 싫어질까 봐가 아니었어요. 언젠가 이 사람도 등을 돌릴 텐데 그 뒷모습을 또 봐야 한다는 게 무서웠던 거예요. 전 결혼에서 저를 가장 아프게 한 건 다툼 그 자체가 아니라, 싸우고 나면 상대가 벽처럼 돌아눕던 그 등이었거든요. 궁합을 신청하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어요. 좋은 말로 등이나 떠밀어주겠거니 했죠. 그런데 선생님이 두 사람을 같이 보시더니 '지난 관계에서 당신을 갉아먹던 패턴과, 이 사람과 만들 관계의 결은 뿌리부터 다르다'고 짚어주셨어요. 제가 전 결혼 얘기를 자세히 쓰지도 않았는데, 제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부서지는 사람인지를 먼저 읽어내시는 게 조금 놀라웠어요. 특히 이 사람은 갈등이 오면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주 앉으려는 기질이라고 하신 대목에서, 읽던 손을 잠깐 내려놨어요. 제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그 등을 이 사람한테서는 안 봐도 된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어깨에 몇 년째 얹혀 있던 게 그제야 조금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그날 리포트를 덮고 한동안 창밖만 봤어요. 무섭기만 하던 재혼이라는 말이, 그제야 조금은 해볼 만한 일처럼 느껴졌거든요. 일교차 큰 요즘처럼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했는데, 방향이 하나 잡히니 거짓말처럼 가라앉더라고요. 결혼이 두 번째라는 게 흠이 아니라, 한 번 겪어봤기에 이번엔 더 잘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처음 들었어요. 다만 아쉬운 건, 작성 폼 항목이 많아서 지난 결혼 얘기를 하나하나 다시 꺼내 적는 게 조금 힘들었어요. 아직 아물지 않은 자리를 손끝으로 다시 눌러보는 것 같아서요. 그 과정만 조금 수월했다면 5점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이만큼 방향을 얻었으니 값은 충분히 했어요. 4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