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나는 왜 늘 혼자일까. 스물넷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을 못 해봤어요. 이 질문을 몇 년째 저 자신한테 던지다가, 결국 프리미엄 심층 분석이라는 걸 신청했어요. 15만원이 부담됐어요. 이 돈이면 갖고 싶던 걸 사도 남는데, 답도 없는 제 속을 들여다보는 데 쓰는 게 맞나 싶었죠. 사실은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백 페이지를 읽어도 결국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하는 뻔한 말이 나올까 봐 겁이 났던 것 같아요. 결제하고도 리포트가 오기 전까지 괜한 돈을 썼나 싶어 몇 번이나 후회했어요. 그런데 리포트를 읽으면서 그 생각이 싹 사라졌어요. 선생님이 제가 연애를 시작조차 못 하는 이유를, 그냥 소심해서가 아니라 제 마음의 구조로 풀어주셨어요. '당신은 거절이 두려운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기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려운 것'이라고요. 어릴 때부터 늘 남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저를 지워온 방식이, 연애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던 거였어요. 남 실망시키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시작 안 하는 게 낫다고, 저도 모르게 그렇게 살아온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도 먼저 저를 지워버리니, 시작이 될 리가 없었던 거죠. 그 문장을 읽는데 참고 있던 게 무너졌어요.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 걸 어떻게 아셨지 싶어서요. 저를 처음으로 누가 제대로 읽어준 기분이었어요. 그 페이지를 캡처해서 한동안 폰 배경화면으로 뒀어요. 흔들릴 때마다 보려고요. 한동안은 세상을, 그리고 저를 지나쳐 온 사람들을 원망했어요. 왜 아무도 나한테 먼저 다가와 주지 않았을까 하고요. 근데 리포트를 덮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다가올 틈을 안 준 건 저였어요. 실망을 살까 봐 제가 먼저 문을 닫아걸고 있었으니,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누굴 원망해봤자 그 밤들이 되돌아오지도 않는데, 원망이라도 해야 그 시간이 덜 억울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화살이 저를 향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트였어요. 혼자였던 시간이 길었던 게 제 잘못이 아니라 아직 저를 몰라서였다는 걸, 이 나이에 처음 알았어요. 다 나은 건 아니에요. 여전히 낯선 사람 앞에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좋아하는 티 한 번 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또 저를 지우려 들겠죠. 그래도 이제 그게 제 버릇이라는 걸 아니까, 지우려는 순간 저를 붙잡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선 것 같아요. 저를 지우지 않고 서 있는 연습부터 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