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왜 늘 다 쏟아붓는 쪽은 나일까.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서른셋인데, 남한테 뭘 해주는 건 그렇게 익숙하면서 정작 제 연애는 매번 저 혼자 다 붓고 텅 비어서 끝났어요. 수업 시간엔 수강생 스무 명의 이름과 그날 기분까지 다 살피면서, 정작 제 마음이 어떤지는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더라고요. 헤어진 사람이 두고 간 머그컵을 반년이 지나도록 못 버리고 그 컵에만 커피를 따라 마시는 저를 보다가, 문득 손이 멈췄어요. 이건 그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라, 제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다 주고 싶어서 앓는 거구나 싶었어요. 미운 게 아니라, 줄 사람이 없어진 제 두 손이 갈 곳을 잃은 거였어요. 그래서 다음 연애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한 번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어서 프리미엄 심층 분석을 신청했어요. 리포트에서 선생님이 '당신은 관계에서 먼저 채워주는 걸로 자기 자리를 확인하는 사람이라,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받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게 문제다'라고 하셨어요.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마음이었는데 그걸 정확히 짚으시니까,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누가 제 속을 들여다보고 대신 문장으로 적어준 것 같았어요. 주는 게 나쁜 게 아니라,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에게 갚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라던 문장이 오래 남았어요. 그게 다였어요. 그 한 줄에 제 지난 연애가 다 설명됐어요. 늘 제가 더 많이 사랑해서 억울하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제가 상대를 사랑의 손님으로만 두고 주인 자리엔 앉히지 않았던 거였어요. 100페이지가 넘어서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왜 제 연애들이 다 비슷하게 끝났는지 하나하나 이어지니까 한 장도 아깝지 않았어요. 15만원이 비싸다고만 여겼던 게 오히려 미안해질 정도로요. 다음 사람에게는 다 주기 전에, 먼저 한 번 받아보려고요. 그게 이 나이에 처음 배우는 숙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