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너는 왜 그런 데 돈을 써?' 이 한마디로 시작된 싸움이 몇 번째인지 이제 세지도 않아요 ㅋㅋ 저는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사는 사람이고, 남자친구는 천 원도 계획 없이는 안 쓰는 사람이에요. 처음엔 이게 귀여운 차이인 줄만 알았어요. 근데 만난 지 일 년을 넘기니까 돈 얘기만 나왔다 하면 서로 목소리에 날이 서더라고요. 좋아하는 마음이랑은 별개로, 이 사람이랑 평생 통장을 합치고 살 수 있을까 싶어서 궁합을 봤어요. 저는 그냥 취향 차이라고 넘기고 싶었는데, 이 사람은 그때마다 정색을 하니까 저도 점점 방어적으로 변하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오래 눈여겨보던 코트를 큰맘 먹고 하나 샀는데, 남자친구 표정이 대번에 굳는 거예요. 축하는커녕 '그 돈 있으면 적금을 붓지'라는 말부터 나왔어요. 제 돈으로 제가 산 건데 왜 죄지은 기분이 들어야 하나 싶어서 서운했고, 그날도 어김없이 싸웠어요. 그날도 새벽에 그 문제로 톡 하다가 싸웠어요. 상대는 읽고 답이 없고, 저는 혼자 남아서 이걸 계속 만나는 게 맞나 검색만 했어요. 다 식어서 불어터진 라면을 앞에 두고 폰만 노려보던 그 밤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제일 무서웠던 건 헤어질까 봐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좋아하는데도 왜 자꾸 서로 상처만 주고받는지, 우리가 이 모양인 채로 영영 못 바뀔까 봐 그게 더 무서웠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보시더니, 이게 성격 차이가 아니라 돈에 담긴 의미 자체가 서로 다른 거라고 하셨어요. '한 분에게 소비는 오늘의 위로이고, 다른 분에게 저축은 내일의 안전'이래요. 저는 불안할 때 사는 걸로 풀고, 남자친구는 불안할 때 모으는 걸로 푸는 거라고요. 둘 다 결국은 불안을 다루는 방식인데 방향만 정반대인 거죠. 제가 폼에 성격이 안 맞는다고만 잔뜩 써놨는데, 정작 핵심은 성격이 아니라 각자 짊어진 불안이라고 짚어주신 거죠. 그 말 듣고 좀 웃겼어요. 우린 싸운 게 아니라 각자 무서워서 정반대로 뛰고 있던 거였구나 싶어서요 ㅋㅋ 서로를 미워한 게 아니라, 서로가 왜 저러는지가 안 보였던 것뿐이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둘을 하나로 억지로 맞추려 들지 말고, 각자 알아서 쓰는 돈이랑 같이 모으는 돈을 아예 따로 나눠보라고 하셨어요. 집에 와서 남자친구한테 이 얘기를 그대로 옮겼더니, 걔가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나 사실 돈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그랬어'라고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어릴 때 집이 갑자기 기울어서, 돈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를 몸으로 겪은 사람이었어요. 그 뒤로 통장에 얼마가 있어야만 겨우 발 뻗고 잔다고요. 저는 그런 얘길 일 년 넘게 만나면서 처음 들었어요. 제가 인색하다고 몰아붙이는 동안, 이 사람은 그 말을 꺼낼 엄두조차 못 냈던 거예요. 이 사람이 제 앞에서 그런 속마음을 꺼낸 게 처음이었어요. 늘 쪼잔하다고, 왜 그렇게 돈에 벌벌 떠냐고 몰아세우기만 했는데, 그 인색함 뒤에 겁먹은 아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더라고요. 그 얼굴을 보고 나니 여태 제가 아무렇게나 던진 말들이 조금 미안해졌어요. 그날 이후로 저희는 통장을 세 개로 나눴어요. 각자 눈치 안 보고 쓰는 용돈 통장 두 개랑, 같이 채워가는 통장 하나요. 제가 뭘 사도 이제 그 사람이 감시하듯 안 보고, 저도 그 사람이 아득바득 모으는 걸 인색하다고 안 읽게 됐어요. 규칙 하나 바꿨을 뿐인데 집 안 공기가 달라졌어요. 아직 완벽하진 않아요. 여전히 가끔은 티격태격하죠. 근데 이제는 적어도 서로 왜 그러는지 아니까, 예전처럼 상대 가슴에 못 박는 말은 안 하게 됐어요. 이 상담이 이 사람 마음을 알려줬다기보다, 서로 말이 안 통하던 우리 둘 사이를 통역해준 느낌이에요. 돈 얘기 하나 넘겼을 뿐인데, 앞으로 다른 문제가 와도 이런 식으로 풀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