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건 저였어요. 그래서 이렇게 재회 후기를 쓰는 것도 좀 염치가 없네요. 서른일곱인데, 그 사람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순간에 홧김에 이별을 통보해버렸어요. 근데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까, 제가 답답하다고 여겼던 그 느림이 사실은 저를 배려하느라 한 박자씩 조심하던 거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늘 제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움직이던 사람이었는데, 저는 그걸 미적지근하다고만 몰아붙였던 거예요. 돌아보면 이 사람은 제가 화를 내도 곧바로 맞받아치는 법이 없었어요. 한 박자 쉬고, 제가 왜 그러는지부터 살피던 사람이었어요. 그 침착함이 그땐 왜 그렇게 답답하게만 보였는지 모르겠어요. 결이 잔잔한 사람을 옆에 두고, 저는 자꾸 파도가 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혼자가 되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보였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늘 저보다 먼저 와서 불을 켜두던 사람이었는데, 캄캄한 현관에 서서 스위치를 더듬을 때마다 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어요. 그 사람이 켜두던 불빛이 그렇게 큰 거였는지 그땐 몰랐어요. 후회가 밀려오는데, 제 발로 찬 사람이 이제 와서 다시 잡는 게 맞나 싶어서 한참을 망설이다 재회 상담을 받았어요. 이런 경우엔 좋은 소리 안 나올 줄 알았어요. 제 발로 찬 사람이 돌아가겠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당신이 그 사람을 떠난 건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편안한 관계가 주는 밋밋함을 위기로 착각한 것'이라고 짚으셨어요. 제 마음을 저조차 몰랐는데, 그 속을 이렇게 정확히 봐주실 줄은 몰랐어요. 편안함을 위기로 착각했다는 그 말이, 제 지난 몇 년을 통째로 설명해주는 것 같았어요. 다시 다가가도 되는 시기랑 방식도 일러주셨는데, 실제로 그즈음 우연히 마주칠 일이 생겨서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어요. 선생님 말대로 조급해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하니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고요. 등을 돌렸던 제가 다시 그 사람과 마주 보고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서두르면 또 제 성질에 그르칠 게 뻔했는데, 미리 브레이크를 걸어주셔서 다행이었어요. 다만 아쉬운 건, 제 마음 분석은 이렇게 깊은데 상대가 지금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쪽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으면 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찬 입장이다 보니 그 사람 속이 제일 궁금했거든요. 그 점이 아쉬워서 4점이에요. 그래도 제가 놓아버린 손이 왜 이렇게까지 아팠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