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부대 근처 자취방에서 혼자 라면을 먹다가 문득 그 사람 생각이 났습니다. 스물다섯에 군무원으로 일하고, 3개월 만난 여자친구와 갑자기 끝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짧았지만 그 안이 워낙 강렬해서, 이렇게 끝난 게 실감이 안 났습니다. 라면 그릇을 앞에 두고, 예전에 둘이 이 좁은 방에서 라면 하나를 나눠 먹던 게 떠올라서 한참 젓가락을 못 들었어요. 처음엔 솔직히 원망도 했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발을 빼버린 그 사람이 야속했어요. 무뚝뚝한 편이라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 삭이다가 재회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녀가 갑자기 멀어진 건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관계가 빨리 깊어지는 속도에 스스로 겁을 낸 거라고 하셨어요. 짧고 강렬한 만남일수록 그 반동으로 도망치는 사람이 있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야속하던 마음이 좀 풀렸습니다. 나를 하찮게 여겨서가 아니라 자기가 감당이 안 됐던 거구나 싶어서요. 원망하던 마음이 이해로 바뀌니까, 이상하게 그 사람이 덜 미워졌어요. 미움이라는 게 사실은 이유를 모를 때 제일 커지는 거더라고요.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하나를 알고 나니, 뾰족하던 게 스르르 내려앉았어요. 혼자 밤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되짚던 사람한테는 그 한마디가 컸습니다. 무작정 연락하지 말고 시간을 두라는 방향도, 저처럼 성급한 사람한텐 꼭 필요한 조언이었습니다. 무작정 들이받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용기라는 걸, 이번에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