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새벽 근무 끝나고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카톡 목록만 스크롤하고 있었어요. 맨 위에 그 사람 이름이 그대로 있는데 누를 수가 없더라고요 ㅋㅋ 엄지손가락만 이름 위에서 왔다 갔다. 응급구조사라 남 살리는 일 하면서 정작 제 마음은 응급실 실려 갈 지경이었어요.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두 달쯤 됐는데, 현장에선 아무렇지 않다가 집에 오면 무너지는 게 반복됐어요. 교대 근무라 생활이 뒤죽박죽이니까 감정도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선 멀쩡히 웃고 인계까지 야무지게 하고 나오는데, 차 문 닫는 순간 어깨가 툭 떨어졌어요.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한참 앉아 있다가 시동을 건 날도 있었고요. 교대 근무가 이럴 땐 참 잔인해요. 남들 다 자는 시간에 깨어 일하고,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혼자 집에 있으니까, 헤어진 사람 생각할 시간만 잔뜩 남더라고요. 야간 뛰고 온 낮에는 커튼 쳐놓고 누워서 천장만 봤어요. 잠은 안 오는데 몸은 천근이고, 그 시간에 옆이 비어 있는 게 더 크게 느껴졌어요. 예전엔 그 시간에 통화라도 했는데, 이제 그 자리에 아무 알림도 안 뜨는 게 제일 적응이 안 됐어요. 집 냉장고엔 아직 그 사람이 좋아하던 요구르트가 그대로 있었어요. 유통기한 지난 걸 알면서도 버리질 못하겠더라고요. 그 요구르트 하나가 뭐라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가슴 한쪽이 콕 눌렸어요. 버리면 진짜 끝인 것 같아서, 상한 걸 알면서도 자꾸 미뤘어요. 그거 하나 못 버리는 제가 한심해서 더 우울했어요. 이런 걸로 상담받는 거 좀 우습다고 생각했어요. 사주가 뭘 알겠나 싶었죠. 근데 선생님이 제가 안 쓴 걸 짚으시는 데서 좀 놀랐어요. 저는 폼에 헤어졌다 세 글자만 덜렁 써놨는데, '이별을 통보한 쪽은 상대인데, 정작 관계를 오래 못 놓는 건 당신'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맞았거든요 ㅋㅋ 걔가 먼저 그만하자 했는데, 두 달째 못 놓고 카톡 목록만 문지르는 게 저였어요. 어떻게 제가 아직도 못 놓고 있는 걸 아셨는지 화면을 한참 다시 봤어요. 그러면서 제 사주 구조상 감정을 몸으로 먼저 앓고 머리로는 한참 뒤에야 정리되는 타입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이별이 길게 아픈 거라고요. 이게 왜 위로가 됐냐면, 저는 제가 유별나게 질척대는 놈인 줄 알았거든요. 남들은 두어 달이면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나만 왜 이러나, 내가 모자란 건가 자책만 했어요. 그게 아니라 원래 회복 속도가 이렇게 생겨먹은 거라니까, 저를 좀 덜 미워하게 됐어요. 남들 앞에선 씩씩한 척 다 하면서, 정작 제 감정 하나는 응급처치를 못 하고 방치해 둔 셈이었어요. 이상하게 그 한마디에 목에 걸려 있던 게 쑥 내려갔어요. 언제쯤 이 사람 생각이 옅어지는지 시기도 짚어주셨는데, 막연히 시간이 약이다 이런 게 아니라 제 흐름상 어느 계절부터 마음이 가벼워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셔서 그날만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끝이 안 보이던 게 날짜로 바뀌니까 견디는 게 달라졌어요. 당장 이번 달은 아니어도, 어느 계절 어름부터는 이 사람 이름을 눌러도 손이 안 떨리는 날이 온다는 게 상상이 됐어요. 그 상상 하나가 야간 근무 사이사이 저를 버티게 했어요. 아쉬운 건 작성 폼이 항목이 진짜 많아요 ㅋㅋ 근무 끝나고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채우려니까 중간에 몇 번을 껐다 켰어요. 그 부분만 좀 간소했으면 5점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저처럼 감정이 늦게 도착하는 사람한텐 이 흐름 하나 미리 알아둔 게 컸어요. 그 도착 시간을 미리 아는 것만으로도 덜 무섭거든요. 아직 그 요구르트는 못 버렸지만, 언젠가 버릴 날이 온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아요. 그 버리는 날이 곧 마음 정리되는 날이겠거니, 이제는 조급하게 굴지 않으려고요. 다 채울 값은 했어요. 4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