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남들 설득하는 게 직업인 사람인데, 정작 제 연애 하나를 못 지켰어요. 마케터로 십몇 년 일하면서 별별 위기 대응은 다 해봤는데, 장거리라는 거리 앞에서는 저도 별수 없더라고요.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게 반복되니까 둘 다 지쳐서, 누가 나쁜 사람도 아닌데 그냥 흐지부지 끝났어요. 크게 싸운 것도,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닌데 끝났다는 게 오히려 더 억울했어요. 헤어지고 한동안은 주말이 제일 이상했어요. 그 사람 만나러 기차표를 끊던 금요일 저녁이 되면 손이 습관처럼 예매 앱을 열더라고요. 갈 데도 없으면서요. 목적지 칸에 그 도시 이름을 반쯤 치다가 지우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광고 카피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쳐내는 사람이 그 세 글자를 못 지워서요. 그 빈 주말을 몇 번 보내고 나서야, 이게 그냥 흐지부지 끝낼 일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어요. 재회 상담을 받은 건 이게 정말 끝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은 거리에 지친 것뿐이라, 만나는 리듬만 바꾸면 다시 이어질 여지가 큰 흐름'이라고 하셨어요. 무리하게 매주 오가려 하지 말고, 서로 숨 쉴 텀을 두는 리듬을 먼저 제안해 보라고 시기까지 짚어주셨어요. 반신반의하며 그 방식대로 조심스레 안부를 건넸는데, 그 사람이 의외로 반갑게 받더라고요 ㅋㅋ. 알고 보니 그쪽도 매주 오가는 그 리듬에 지쳐 있었던 거예요. 둘 다 힘든데 힘들단 말을 못 하고, 애정이 식은 척 서로를 놓았던 거고요. 요즘은 예전처럼 매일 붙어 있으려 애쓰는 대신, 텀을 두고 편하게 연락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니 오히려 만날 때마다 더 반가워요. 거리를 못 이긴 게 아니라, 거리를 대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였어요. 우리는 매일 붙어 있어야 사랑인 줄 알고, 그 무게를 서로한테 지우다 지쳤던 거예요. 그 하나를 알려주신 것만으로 충분히 값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