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반도체 쪽 일을 하다 보니 뭐든 검증을 거쳐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에요. 약혼까지 하고도 이 사람이랑 평생 가도 되는 건지, 마지막으로 한 번은 객관적으로 점검해 보고 싶어서 궁합을 신청했어요. 남들은 약혼했으면 됐지 뭘 또 보냐지만, 저는 확인되지 않은 걸 그냥 믿고 넘어가는 게 제일 불안하거든요. 사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커플이었어요. 주변에선 잘 어울린다고, 부럽다고들 했고요. 그런데 저는 그 말들 속에서도 혼자 조용히 계산을 돌리고 있었어요. 이 사람이랑 십 년, 이십 년을 부딪히며 살아도 정말 괜찮을까. 결혼은 한 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힘든 거잖아요. 공정 하나 잘못 넘어가면 웨이퍼 한 판이 통째로 날아가는 걸 매일 보는 사람이라, 그 되돌릴 수 없음이 유독 무거웠어요. 티는 안 냈지만 그 물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구조를 보시더니 '두 사람은 뜨겁게 타오르는 조합이라기보다, 시간이 갈수록 신뢰가 두꺼워지는 결혼에 강한 흐름'이라고 하셨어요. 특히 제가 걱정하던 갈등 방식에 대해, 서로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고 한 박자 쉬어가는 성향이라 큰 파국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짚어주셨어요. 저희는 싸워도 소리를 안 질러요. 한쪽이 먼저 방에 들어가 좀 식히고 나오면, 다른 쪽이 물 한 잔 떠다 주면서 슬그머니 푸는 식이거든요. 약혼자와 저를 겪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셨나 싶을 만큼, 저희가 실제로 싸우고 화해하는 방식 그대로여서 그 대목에서 잠깐 손을 멈췄어요. 검증하려고 받았는데 오히려 확신을 얻고 나왔어요. 혼자 돌리던 계산기를 내려놓고, 그 사람 손을 잡고 결혼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어요. 돌아보면 저는 이 사람을 못 믿은 게 아니라,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 제 판단을 못 믿고 있었던 거예요. 요란한 위로가 아니라 담백하게 근거를 짚어주는 방식이라, 저 같은 사람한테는 그게 제일 미더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