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결혼 18년 차, 마흔다섯 살 가장입니다. 한 달 전에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식탁에 앉아서 아이들 학교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우리 정리하자"라고 했어요.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굳었어요. 옆에 있던 큰아이가 "엄마 무슨 말이야" 하는데 아내가 "엄마 아빠 얘기야, 방에 가있어"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귓가에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거렸어요. 식탁 위에 놓인 된장찌개에서 김이 올라오는 게 슬로모션처럼 보였어요. 아내 말로는 더 이상 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숨이 막힌다고 했어요. 제가 가정에 무관심했고, 아이들 교육도 다 자기한테 떠넘기면서 본인은 회사 일만 했다고요. 솔직히 맞는 말이에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관리자로 승진하고 나서 야근이 달고 살았고, 주말에도 노트북을 펴놓고 있는 날이 더 많았어요. 작은아이 운동회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큰아이 학부모 상담은 항상 아내가 혼자 갔어요. 아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나도 회사에서 힘든 건 마찬가지야"라고 대충 넘긴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돌이켜보면 경고 신호는 많았어요. 작년에 아내가 거실에 앉아서 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왜 우냐고 물으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때 더 물어볼 걸 그랬어요. 그냥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넘겼어요. 결혼기념일을 까먹은 적도 두 번이에요. 처음에는 아내가 화를 냈는데 두 번째는 화도 안 내더라고요. 그게 더 무서운 신호였는데 그때는 몰랐어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건 포기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혼이라는 단어를 직접 듣는 건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어요. 회사에서도 집중이 안 되고, 밤에 잠이 안 와서 새벽에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날이 계속됐어요. 처음으로 내 인생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회사에서 쌓아온 경력, 직위, 이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어요.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들이 부모 이혼의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게 가슴을 찢었어요. 큰아이 방 벽에 그려져 있는 가족 그림, 아빠 엄마 그리고 자기와 동생이 손잡고 웃고 있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목이 막혔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신청했어요. 마흔다섯 먹은 남자가 밤에 이불 속에서 핸드폰으로 연애 상담을 신청하는 게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회사 후배한테도, 친구한테도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남자가 집에서 쫓겨날 위기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어요. 혼자 삼키고 있었어요. 어느 날 새벽에 잠이 안 와서 거실에 나갔는데 식탁에 놓인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어요. 작은애 돌잔치 때 찍은 사진인데 저도 아내도 웃고 있었어요. 그때는 진짜 행복했어요. 아내가 육아에 지쳐있어도 제가 퇴근하면 웃어줬고, 주말에 같이 장을 보면서 뭐 먹을까 고르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어요. 그 사진 속의 남자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어요. 언제부터 이 사람의 웃음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걸까.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식탁에 엎드려서 울었어요. 소리 안 나게 어깨만 떨면서. 마흔다섯 남자의 새벽 울음이 그렇게 비참할 줄 몰랐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보시더니 이 관계는 끊어질 인연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다만 지금까지 쌓인 감정의 빚이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갚으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요. 갑자기 선물 공세를 하거나 여행을 제안하면 아내 입장에서는 '또 무마하려고' 라고 느낀다면서요. 아내의 사주에서도 올해 극심한 스트레스가 보이는데 이건 저 때문만이 아니라 본인의 정체성 고민도 겹쳐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18년 동안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이 마흔이 넘어서 자아를 찾으려는 몸부림이 이혼 요구로 표출된 거라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제 사주 분석이었어요. 감정 표현을 극도로 어려워하는 구조가 있다고요. 사랑하는 마음은 있는데 그걸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모르는 거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에서 물이 그냥 떨어졌어요. 마흔다섯 살 남자가 핸드폰 들고 우는 게 어이없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요. 맞거든요. 아내한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언제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생각은 하는데 입 밖으로 안 나왔어요. 그게 무능력인 줄도 몰랐어요. 아내가 아이들 재우고 피곤한 얼굴로 거실에 나올 때 수고했다는 한 마디를 왜 못 했을까요. 그 한 마디면 됐을 텐데. 선생님은 이혼 결정을 당장 내리지 말고 석 달만 시간을 달라고 아내한테 요청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석 달 동안 매주 하나씩 구체적인 변화를 보여주라고요. 큰 거 말고 아주 작은 것부터. 아이들 학원 픽업 한 번 해주기, 설거지 하기, 주말에 노트북 닫고 같이 산책하기. 이런 작은 행동이 쌓이면 아내도 변화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선생님이 덧붙이신 말이 기억에 남아요. 신뢰는 무너뜨리는 건 한 순간이지만 다시 쌓는 건 벽돌을 하나씩 올리는 것과 같다고요. 조급하게 한꺼번에 쌓으려 하면 또 무너지니까, 하루에 벽돌 하나만 올린다는 마음으로 임하라고 하셨어요. 아내한테 석 달만 달라고 말한 날, 아내가 한참 동안 저를 보더니 "당신이 변할 수 있어?" 라고 물었어요. 그 눈에 불신과 기대가 동시에 담겨있었어요. "모르겠지만 해보겠다"고 했어요. 아내가 고개를 돌렸지만 눈가가 젖어있는 게 보였어요. 지금 4주째 실천 중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큰애 학원 끝나는 시간도 몰라서 아내한테 물어봐야 했고,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려고 빵집에 갔는데 뭘 좋아하는지 기억이 안 나서 직원한테 추천받았어요. 그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어요. 18년을 같이 살았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빵도 모르다니. 빵집 직원이 추천해준 크로아상을 사 들고 집에 오는 길에 얼굴이 뜨거웠어요. 이게 남편이 할 짓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그 작은 행동 하나에 아내 표정이 바뀌는 걸 봤습니다. 빵 상자를 건넸을 때 아내가 정말 놀란 표정으로 저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어요. 나중에 보니까 다 드셨더라고요. 빈 상자가 쓰레기통에 있는 걸 보는데 목이 메였어요. 다음 날 빵집에 다시 가서 이번에는 직원한테 안 물어보고 아내가 먹던 빵을 찾아봤어요. 크림치즈가 들어간 베이글이었어요. 18년 동안 아내가 그걸 먹는 걸 몇 번을 봤을 텐데 이제서야 기억해내는 제가 한심했어요. 지난주에는 토요일에 작은애 손을 잡고 공원에 갔어요. 아이가 "아빠 오늘 회사 안 가?" 라고 물었을 때 가슴이 무너졌어요. 이 아이한테 토요일에 아빠와 공원 가는 게 비일상적인 이벤트라니. 공원 벤치에 앉아서 아이가 뛰어노는 걸 보는데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어요. 내가 노트북만 보고 있는 사이에 이 아이는 자전거도 배우고, 키도 크고, 좋아하는 것도 생겼더라고요. 아이한테 요즘 뭐가 좋아 물어봤더니 신이 나서 한참을 얘기하는데, 이런 대화를 한 게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아직 이혼 얘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식탁의 공기는 확실히 달라졌어요. 아내가 가끔 저를 보는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느껴요. 적대감 대신 관찰하는 눈빛, 어쩌면 조심스러운 기대. 어제 저녁에 아내가 제 밥그릇에 반찬을 하나 더 올려줬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행동에 눈물이 날 뻔했어요. 이 상담이 아니었으면 무작정 매달리거나, 아니면 자존심에 그냥 도장을 찍었을 것 같아요. 둘 다 최악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방향을 잡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