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여름휴가로 간 바닷가에서, 손잡고 걷는 커플들을 멍하니 보다가 마음이 내려앉았어요. 저희는 여행만 오면 싸우거든요. 저는 동선을 다 짜야 움직이는 사람이고 남자친구는 발길 닿는 대로 다니자는 사람이라, 계획표 하나를 두고 매번 부딪혀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늘 아무렇지 않은 척 라디오를 틀어요. 근데 속으로는, 이게 그냥 성격 차이로 넘길 일인지 아니면 애초에 안 맞는 사람인 건지가 헷갈려서 오래 삼키고 있었어요. 성우 준비하면서 오디션 일정을 분 단위로 관리하는 게 몸에 밴 탓인지, 저는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불안이 확 올라오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의 즉흥이 저한테는 편한 게 아니라 자꾸 위협처럼 느껴졌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기운을 보시더니 '두 분은 부딪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 명이 방향을 잡고 한 명이 여백을 만드는 조합이라 오히려 서로가 없으면 각자 극단으로 치우치는 구조'라고 하셨어요. 제 조바심에 그 사람의 즉흥이 숨통이 되어준다고요. 싸움의 내용이 아니라 그 싸움이 왜 붙는지를 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 듣고 이번 달 주말 나들이는 계획을 반만 짜고 나머지 반은 그 사람한테 맡겨봤어요. 거짓말처럼 안 싸웠어요. 제가 손을 놓으니까 그 사람도 제 불안을 배려하더라고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부딪히던 자리가 서로 기대는 자리로 바뀌기 시작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