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남자친구와 5년째 사귀고 있는데 솔직히 요즘 심장이 안 뛰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카톡 알림만 와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지금은 알림이 와도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 넘기게 돼요. 데이트도 매번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시키고, 대화 주제도 뻔하고, 끝나면 각자 집에 가는 게 루틴이 됐어요. 설렘이 사라졌어요. 처음에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5년이면 당연히 처음 같을 수는 없지. 그런데 문제는 설렘만 사라진 게 아니라 보고 싶다는 감정 자체가 희미해진 거예요. 만나는 날을 기다리지 않게 됐어요. 오히려 약속이 취소되면 은근히 홀가분한 거예요. 이게 권태기인지 마음이 식은 건지 구분이 안 돼서 무서웠어요. 친구한테 말했더니 "5년이면 그럴 만도 하지" 하는데 그게 위로가 안 됐어요. 그럴 만하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잖아요. 이 사람을 아직 사랑하는 건지, 습관으로 만나는 건지 알고 싶었어요. 어젯밤에 남자친구 사진첩을 넘기다가 처음 만났을 때 사진이 나왔어요. 둘 다 웃고 있는 사진인데, 그때의 제 눈이 지금과 다르더라고요. 그때는 이 사람만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딜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보시더니 감정이 식은 게 아니라 편안함으로 변환된 상태라고 하셨어요. 연애 초반의 설렘은 불안에서 오는 흥분인데, 5년 동안 안정감이 쌓이면서 그 흥분이 사라진 거래요. 설렘이 없는 게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신뢰가 깊어진 증거라고요. 다만 관계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기라면서, 같이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면 다른 종류의 설렘이 돌아올 수 있다고 하셨어요. 권태기가 끝이 아니라 관계의 다음 단계로 가는 문이라는 말이 와닿았어요. 이번 주말에 같이 한 번도 안 해본 도예 수업을 신청했어요. 새로운 뭔가를 같이 하면서 다시 이 사람을 알아가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