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약혼반지를 왼손에 끼고 잠든 첫날 밤, 저는 새벽 두 시에 눈을 떴어요. 남들 눈엔 청첩장 시안까지 나온 사람이 뭐가 문제인가 싶겠죠. 근데 반지의 무게가 손가락에 익숙해질수록 이상하게 잠이 얕아졌어요. 낮에는 괜찮았어요. 손님 손톱에 젤을 올리고 큐티클을 정리하는 동안은 손끝에만 집중하면 되니까요. 문제는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불을 끄는 순간이었어요. 이 사람이랑 평생을 산다는 말이 그제야 실감으로 밀려오면서,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겁이 덜컥 났거든요. 결혼을 앞두고 이런 마음이 드는 게 나만 이상한 건가 싶어서 누구한테도 못 물었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기운을 나란히 놓고 보시더니 '두 분은 크게 부딪히는 조합은 아닌데, 한쪽이 자꾸 참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구조'라고 하셨어요. 그 참는 쪽이 저였어요. 싸우기 싫어서, 분위기 깨기 싫어서 하고 싶은 말을 삼켜온 게 저한테는 배려였는데, 선생님은 그게 결혼 후엔 곪는다고 하셨어요. 이 습관 하나는 식장 들어가기 전에 꼭 바꾸고 가라고요. 제가 불안했던 진짜 이유를 그제야 알았어요. 이 사람에게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어봐도 되는 걸 안 물어보고 참기만 하며 살아온 제 방식이 무서웠던 거예요. 미래가 겁났던 게 아니라, 그 미래를 또 혼자 삼키며 견딜까 봐 겁이 났던 거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니 밤이 조금 조용해졌어요. 아직 결혼이 아주 안 겁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이제는 겁이 나면 삼키는 대신 물어보기로 했어요. 그 방향 하나 잡은 것만으로 반지가 한결 가벼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