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헤어진 지 다섯 달이 됐어요. 정확히는 헤어졌다기보다 멀어졌다는 말이 더 맞아요. 남자친구가 교환학생으로 1년을 나가게 됐어요. 처음엔 둘 다 롱디쯤은 문제없다고 큰소리쳤어요. 근데 두 달쯤 지나니까 시차 때문에 통화 시간 한 번 맞추는 게 일이 되더라고요. 누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바람이 난 것도 아닌데, 연락이 뜸해지다가 어느 날 그쪽에서 지금은 서로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했어요. 싸운 것도 아니라 붙잡을 명분조차 없었어요. 그게 더 막막했어요. 법무법인에서 비서로 일해요. 변호사들 일정 맞추고 서류 챙기다 보면 낮은 정신없이 지나가요. 문제는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이었어요. 그 조용한 시간이 하루 중 제일 견디기 힘들었어요. 물리적으로 떨어진 거지 마음이 식은 건 아니라고 저는 믿고 싶었는데, 그게 저 혼자만의 믿음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 그 지점에서 늘 막혔어요. 밥을 차려도 두 사람 몫이 습관처럼 손에 잡혀서, 국그릇 하나를 도로 넣는 데 한참이 걸렸어요. 이런 상담을 신청하는 제가 좀 우스웠어요. 원래 사주 같은 거 안 보는 사람이거든요. 남들한테 말하면 그깟 걸 뭘 믿냐고 할 게 뻔했고요. 근데 뭐라도 붙잡고 싶은 상태가 되면 사람이 안 하던 걸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어차피 좋은 말 몇 줄 적어주고 기다리라 하겠지, 그런 뻔한 위로면 돈만 버리는 거다 싶었어요. 결과를 받고 그 의심이 가라앉았어요. 선생님이 상대 상황을 먼저 짚으셨어요. '이 사람은 지금 낯선 환경에서 자기 앞가림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꽉 차 있는 시기라, 누군가를 챙길 여유 자체가 없는 상태'라고요. 마음이 식어서 놓은 게 아니라 자기 그릇이 넘치기 직전이라 손에 든 걸 잠시 내려놓은 거라고. 제가 연락하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미안해서 오히려 말을 더 못 붙이는 구조일 거라고도 하셨어요. 실제로 그 사람이 마지막에 미안하다는 말만 유독 여러 번 했던 게 그제야 이해가 됐어요. 제가 정말 궁금했던 건 하나였어요. 기다리는 게 의미가 있는 건지, 아니면 저 혼자 붙잡고 있는 건지. 선생님은 상대가 돌아올 여유가 생기는 때를 내년 봄 무렵으로 보셨어요. 그 사람이 환경에 적응을 끝내고 숨을 돌리는 시기가 그쯤이라고요. 다만 그때 제가 어떤 상태로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매달리다 지친 채로 그 봄을 맞으면 오히려 어긋나고, 제 일상을 단단하게 세워두고 맞으면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질 흐름이라고. 무작정 기다리라가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뭘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쪽이라 그 말이 컸어요. 이별의 실감은 큰 데서 오지 않았어요. 마트에서 그 사람이 좋아하던 요거트를 무심코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도로 빼는 순간, 자기 전에 습관처럼 그 사람 카톡 방을 열었다가 마지막 대화에서 손을 멈추는 순간, 그런 사소한 데서 훅 밀려왔어요. 크게 앓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여러 번 작게 미끄러지는 쪽이라, 남한테 힘들다고 말하기도 애매했어요. 그래서 더 혼자였고요. 선생님 글을 읽고 제일 먼저 한 건, 그 사람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던 걸 끊는 거였어요. 시차를 계산해서 지금쯤 자겠지 깼겠지 하며 그 사람 하루를 통째로 따라 살던 저를, 이제 제 하루로 데려오는 연습이요. 처음엔 손이 자꾸 그쪽으로 가는데, 며칠 지나니까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는 그 조용한 시간이 조금씩 견딜 만해졌어요. 기다린다는 게 이렇게 능동적인 일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저는 여태 기다림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참기만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사실 저를 제일 가라앉게 했던 건 이별 자체가 아니라, 이 관계가 저 혼자만의 착각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나만 아직 붙잡고 있는 거라면 이 기다림이 얼마나 초라해지나 싶었거든요. 미운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 하루에서 이미 지워진 사람일까 봐 그게 무서웠던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상대의 마음과 시기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니까, 적어도 제가 헛것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니라는 확인이 됐어요. 그 확인 하나가 다섯 달을 주저앉아 있던 저를 일으켰어요. 다만 별 하나를 뺀 이유가 있어요. 결과지 중간중간 표현이 어려웠어요. 기운이 어떻고 흐름이 어떻고 하는 대목들은 한 번 읽어서는 잘 안 들어와서, 두세 번 다시 읽은 문단이 몇 군데 있었어요. 내용이 부실하다는 게 아니라, 저처럼 이런 걸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요. 그것만 빼면 궁금했던 건 거의 다 답을 얻었어요. 내년 봄까지, 그 사람이 아니라 저를 먼저 챙기면서 지내보려고요. 그때 우리가 다시 이어지든 아니든, 적어도 그 봄의 저는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저를 잃어버린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