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카페에서 이 사람이랑 인터넷에 떠도는 MBTI 궁합표를 같이 들여다본 적이 있어요. 그 표 있잖아요, 무슨 유형끼리는 천생연분이고 무슨 유형끼리는 상극이라는. 우리 둘 조합이 하필 '최악의 궁합' 칸에 딱 박혀 있더라고요 ㅋㅋ 그 자리에선 둘 다 웃었는데, 집에 와서 혼자 있으니 이상하게 찜찜했어요. 서른아홉이나 먹고 인터넷 표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우습지만, 실제로 잘 지내면서도 그 칸이 자꾸 뒤통수를 잡아당겼거든요. 이상하게 이 사람이랑은 안 맞는다는 그 표가 무색하게 잘 맞아요. 취향도 비슷하고, 싸워도 하루를 안 넘겨요. 근데 잘 맞으면 맞는 대로 불안한 게, 이게 진짜 잘 맞는 건지 아니면 제가 콩깍지가 씌어서 문제를 못 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겉으로 평온한 날일수록 속으로는 언제 뭐가 터질까 조용히 대비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좋은데도 마음 한구석을 못 놓는 그 버릇이 저는 늘 피곤했어요. 그래서 좀 더 근본적인 걸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궁합 상담을 신청했어요. 결과지를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은 우리를 유형으로 안 보는구나였어요. MBTI가 성격의 겉옷을 보는 거라면, 선생님은 두 사람이 에너지를 쓰는 방식 자체를 들여다보시더라고요. 선생님이 '두 사람은 밖으로 드러나는 기질은 정반대라 남들 눈엔 안 맞아 보이지만, 속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거의 같은 조합'이라고 하셨어요. 겉이 다르니까 부딪히는 것 같아도, 정작 큰 결정 앞에서는 늘 같은 방향을 본다고요. 이게 왜 그렇게 와닿았냐면, 저희가 진짜 그래요. 사소한 건 매일 티격태격하는데 정작 돈 쓸 때나 사람 대할 때 기준은 신기할 만큼 똑같거든요. 남들은 저렇게 다른데 어떻게 사냐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엔 한 번도 크게 어긋난 적이 없어요. 그 이유를 이제야 설명 들은 기분이었어요. 예를 들면 작년에 둘이 유럽으로 여행을 갔는데, 저는 동선을 분 단위로 짜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그날그날 발길 닿는 대로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첫날부터 부딪혔어요. 그땐 아 역시 우리 안 맞나 싶어서 속으로 또 그 궁합표를 떠올렸거든요. 근데 막상 여행 경비를 어디에 얼마나 쓸지, 지쳐하는 서로를 언제 어떻게 챙길지 그런 큰 판단에서는 이상할 만큼 손발이 맞았어요. 길을 잃고 헤맨 날도 서로 탓하는 대신 그냥 같이 웃어버렸고요. 여행이 끝날 때쯤엔 계획이냐 즉흥이냐 하는 게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둘 다 알았어요. 선생님 설명을 읽고 나서야 그 여행이 왜 그렇게 흘렀는지 뒤늦게 이해가 됐어요. 겉으로 부딪힌 건 껍데기였고, 속은 계속 같은 쪽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선생님이 짚어주신 갈등 패턴도 정확했어요. 두 사람은 평소엔 문제가 없는데, 한쪽이 지치고 예민해지는 시기가 오면 그 겉기질 차이가 갑자기 커 보인다고 하셨어요. 그럴 때 상대의 다름을 성격 탓으로 몰면 크게 번지니까, 아 지금 저 사람이 힘든 시기구나로 읽으라고요. 실제로 저희가 크게 부딪혔던 게 다 둘 중 하나가 번아웃 왔을 때였어요. 그걸 미리 알고 있으면 다음엔 안 휘말릴 것 같아요. 이 얘기가 특히 고마웠던 게, 저는 그동안 이 사람이 예민해질 때마다 이 관계가 흔들린다고 느꼈거든요. 저 사람이 갑자기 낯설어 보이고, 우리가 정말 안 맞나 하는 그 오래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남들이 우리 보고 어떻게 저렇게 다른 둘이 만나냐고 물을 때마다 속으로 뜨끔했던 것도 그 불안 때문이었고요. 근데 그게 우리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이 지친 시기라는 걸 알고 나니, 다음에 또 그런 날이 와도 표 안 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흔들리는 건 관계가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이었던 거니까요. 이제는 저 사람이 날카로워지면 겁내는 대신 밥은 먹었냐고 먼저 물어볼 것 같아요. 다른 게 흠이 아니라 서로를 채우는 자리였다는 걸, 이제는 남들한테도 웃으며 말해요.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담백하게 말씀해주셨어요. 불꽃같이 타오르는 조합은 아니지만 오래 같이 갈수록 서로 편해지는 구조라, 지금 잘 맞는 게 우연이 아니라고요. 다만 서로 편해질수록 표현을 덜 하게 되는 게 이 조합의 유일한 함정이라, 편하다고 말수까지 줄이면 안 된다는 조언도 덧붙여주셨어요. 앞으로 뭘 조심하면 되는지가 손에 잡혔어요. 딱 하나, 오만원이 저한테 적은 돈은 아니라 신청할 때 살짝 망설였어요. 다 읽고 나선 이 사람이랑 앞으로 수십 년을 두고 보는 건데 이 정도는 값어치를 한다 싶으면서도, 솔직히 가격이 조금만 더 부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남아서 별 하나는 뺐어요. 내용만 보면 다섯 개 주고 싶어요. 이제 그 MBTI 표는 안 봐요 ㅋㅋ 우리를 제일 정확히 본 건 그 표가 아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