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새벽 두 시에 지난 연애들의 카톡을 처음부터 다시 스크롤하고 있었어요. 세 번의 연애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끝났을까, 마치 같은 코드를 복사해 붙여넣은 것처럼요. 서른여섯, 백엔드 개발자예요. 로그를 뒤져 버그의 근본 원인을 찾는 게 제 일인데, 정작 제 연애에서 반복되는 오류는 도무지 원인을 못 찾겠더라고요. 세 사람 다 처음엔 저한테 푹 빠졌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 떠났어요. 공통 변수는 상대가 아니라 저 하나였으니, 이번엔 저 자신을 열어보고 싶어서 프리미엄을 신청했어요. 가장 오래 만난 사람이 떠나던 날, 저는 그 사람이 두고 간 머그컵을 설거지통에 그대로 두고 며칠을 못 씻었어요. 컵에 남은 커피 자국을 지우는 게 그 사람을 마저 지우는 것 같아서요. 개발자가 별거 아닌 컵 하나에 이러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그 커피 자국을 끝내 문질러 지운 날 저는 결국 또 혼자였어요. 선생님이 제 구조를 짚으시는데, 저는 사랑받는다는 걸 잘 못 믿어서 상대의 마음을 자꾸 시험하고 확인받으려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괜찮냐고, 정말 날 좋아하냐고 반복해서 묻는 그 목마름이 결국 상대를 지치게 하는 거라고요. 처음엔 사랑스럽던 그 불안이 나중엔 상대에게 숙제가 된다는 대목에서, 저는 손끝이 서늘해졌어요. 헤어질 때마다 상대가 하던 말이 정확히 그거였거든요. 너는 아무리 해줘도 밑 빠진 독 같다고. 그 목마름의 뿌리가 어릴 때 충분히 채워지지 못한 애정에 닿아 있다는 대목에선, 화면을 끄지도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사실 저는 제가 사랑을 못 받아본 사람이라는 걸 오래 부정해 왔거든요. 부모님은 저를 사랑하셨지만 늘 바쁘셨고, 저는 알아서 크는 아이였어요. 떼쓰지 않는 착한 아이요. 아프다고 하면 부모님은 미안해하셨지만, 그 미안함이 저를 더 조용한 아이로 만들었어요. 부모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제 결핍을 스스로 지워버린 거죠. 그 얘길 아무한테도 한 적이 없는데, 리포트가 제 목마름의 출처를 이렇게 정확히 짚으니 이상하게 눈물이 났어요. 미워할 대상이 사라지고, 그냥 그때의 어린 제가 안쓰러워졌어요. 돌아보면 저는 누가 저를 좋아한다고 하면 늘 왜요, 제 어디가요 하고 되물었어요. 칭찬을 들으면 기뻐하기보다 이 사람이 곧 실망하겠지 하고 지레 마음을 접었고요. 사랑을 받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받는 손이 늘 서툴렀던 거예요. 한동안은 그 문장을 손끝으로 짚어가며 몇 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나를 안 사랑해서 떠난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못 믿어서 자꾸 밀어낸 거였다는 걸 서른여섯에야 알았어요. 당장 다음 연애가 잘될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래도 이제는 상대를 시험하려는 충동이 올라올 때, 아 이게 그 목마름이구나 하고 잠깐 멈출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짧은 멈춤 하나가 다음 관계를 살릴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요. 코드는 원인을 알면 고칠 수 있잖아요. 제 연애도 이제 겨우 그 원인 줄을 찾은 셈이에요. 저처럼 매번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잃어온 분이라면, 그 반복의 출처를 아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조금은 트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