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스물다섯에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어요. 코드는 조건을 정확히 넣으면 결과가 딱 떨어지는데, 사람 사이엔 그런 게 없다는 걸 요즘 뼈저리게 느껴요. 아무리 조건을 맞춰 넣어도 마음이라는 반환값은 매번 예상을 벗어나거든요. 제가 만나는 사람은 저보다 아홉 살 위고, 한 번의 결혼을 정리한 분이에요. 재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어요. 나이 차이도 그렇고 그분의 지난 결혼도 그렇고, 주변에서 걱정을 참 많이 해요. 사실 저도 확신이 필요했어요.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결정하기엔, 걸린 게 너무 많은 자리였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무섭긴 했어요. 이 사람 좋은 건 분명한데, 좋다는 감정 하나로 인생에서 제일 큰 커밋을 눌러도 되나 싶었거든요. 코드였으면 테스트라도 돌려볼 텐데, 결혼엔 스테이징 서버가 없잖아요. 배포하면 그냥 프로덕션인 거죠. 그 생각을 하면 밤에 자려고 누워도 천장만 봤어요. 이 결정이 잘못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무게가, 스물다섯한테는 좀 버거웠어요. 그래서 궁합 상담을 신청했어요. 신청 폼을 채우면서도 마음이 복잡했어요. 사주로 두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가 정말 나온다고? 게다가 이미 한 번의 결혼을 거친 사람인데, 그 이력까지 봐줄 수 있을까? 의심 반 기대 반이었지만, 뭐라도 근거가 있으면 이 결정에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결과지를 받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두 사람의 결이 부딪히는 지점을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좋은 말만 늘어놓았으면 오히려 안 믿었을 텐데요. 선생님은 두 분은 큰 방향은 잘 맞지만, 당신은 급하게 결론을 내려는 기질이고 상대는 한 번 데인 뒤라 결정을 자꾸 미루는 기질이라, 이 속도 차이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짚으셨어요. 이 대목에서 좀 뜨끔했어요. 제가 자꾸 그래서 우리 언제 어떻게 할 건데 하고 재촉하고, 그분은 그럴 때마다 말수가 줄거든요.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이 저를 안심시켰어요. 그 속도 차이가 서로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제 추진력이 그분의 신중함을 끌어주고 그분의 신중함이 제 조급함을 눌러주는 방향으로 쓰이면, 오히려 오래 가는 조합이라고요. 지난 결혼의 상처가 이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 게 아니라 더 신중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해석도 좋았어요. 그분을 바라보는 제 눈이 그 문장 하나로 조금 달라졌어요.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칫했어요. 새벽에 혼자 청첩장 샘플을 열어봤다 닫았다 하던 제 마음을,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적어놓으셨거든요. 결정을 앞두고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던 그 밤을, 저 혼자만 아는 줄 알았는데요. 그 한 줄에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어요. 주변에서는 아홉 살 차이에 재혼이면 네가 손해 보는 거라고들 했어요. 어린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자리에 들어가냐고요. 그 말들이 신청 폼을 채우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나이 차이나 이력을 결점으로 깔아놓고 시작하지 않으셨어요. 두 사람 각자의 기질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먼저 보고, 그 위에서 조심할 지점을 짚어주셨어요. 남들이 조건표로 계산하던 걸 사람 대 사람의 궁합으로 다시 봐준 느낌이었어요. 그게 저한테는 제일 큰 위로였어요. 제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어리석은 게 아니었다는 확인이요. 남들이 저울에 올려놓고 손해다 이득이다 재던 걸, 처음으로 사람의 눈으로 봐준 셈이니까요. 지속 가능성에 대한 판단도 좋았어요. 무조건 잘 된다가 아니라, 두 사람이 이 속도 차이를 대화로 조율하는 시기를 한 번 넘기면 안정으로 접어든다는, 조건이 붙은 이야기라 더 신뢰가 갔어요. 무조건 잘 된다고 했으면 오히려 못 믿었을 거예요. 조건이 붙어 있으니까, 그 조건을 지키면 되겠다는 할 일이 손에 잡혔어요. 확언이 아니라 지도를 한 장 받은 느낌이랄까요. 리포트를 다 읽고 나서, 저는 그분한테 처음으로 제 속도가 조급했던 것 같다고 말했어요. 늘 언제 어떻게 할 거냐고 몰아붙이던 제가 먼저 그렇게 말하니까, 그분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저를 오래 보더라고요. 그러고는 자기도 결정을 미룬 게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 번 데인 게 무서워서였다고, 처음으로 속을 꺼냈어요. 우리 둘 다 상대의 속도를 제 방식으로만 해석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대화 한 번으로 삼 년 같던 벽이 조금 낮아졌어요. 지금은 그분과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솔직하게 나누기 시작했어요. 결정은 아직이지만, 적어도 무엇을 조율해야 하는지는 또렷해졌어요. 무엇보다 이 사람을 향한 제 마음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는 근거가 생긴 게 제일 컸어요. 코드처럼 조건만 맞추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으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상담으로 오히려 더 깊이 배웠어요. 저처럼 큰 결정 앞에서 밤잠을 설치는 분이라면, 근거 위에 마음을 한번 얹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5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