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같이 살 집을 보러 다니다가, 문득 이 사람이랑 정말 평생 부딪히며 살아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훅 들었어요. 서른여섯에 하는 동거라 더 신중해지더라고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해요. 저는 뭐든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하는 사람인데, 사람 속만큼은 도무지 미리보기가 안 되잖아요. 시안은 몇 번이고 고쳐볼 수 있는데 사람은 함께 살아본 뒤에야 알게 되니까, 그게 겁이 났어요. 미리보기 버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궁합 상담을 신청했어요. 사실 요즘 사소한 걸로 자주 부딪혀서,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하는 원망이 슬며시 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보시더니 '두 분은 생활 리듬이 정반대라 함께 살면 초반에 사소한 데서 자주 부딪힐 구조인데, 큰 가치관은 놀랄 만큼 같은 방향'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저희가 정리 습관이나 잠버릇 같은 걸로는 늘 티격태격하는데, 정작 돈 쓰는 기준이나 미래 그림은 어쩐지 딱 맞거든요. 어떻게 아셨는지 소름이 살짝 돋았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의 다툼이 사람을 잘못 고른 신호가 아니라, 그냥 리듬이 다른 데서 오는 거였다는 게 보였어요. 몇 달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의심이 그 한마디에 스르르 풀렸어요. 원망하던 마음이 슬그머니 접히더라고요. 부딪히는 지점은 미리 알고 들어가면 조율하면 된다고 하셔서 마음이 놓였어요. 단풍 들 즈음 새집에서 같이 첫 가을을 보내기로 했어요. 여전히 양말 뒤집어 벗어놓는 걸로 티격태격하겠지만, 그게 헤어질 이유는 아니라는 걸 이제 아니까요. 요즘은 부딪혀도 예전만큼 겁이 안 나요. 요란하진 않아도 조용히 만족스러운 상담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