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혼자 떠난 여름휴가였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 발코니에 앉아 있는데, 문득 이 풍경을 그 사람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 전에 이혼한 전남편 말입니다. 서른세 살이고 유치원 교사입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하루 종일 웃지만, 정리된 줄로만 알았던 그 사람 생각이 이렇게 불쑥 올라오는 걸 보면 저도 제 마음을 다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지에서까지 그 사람이 떠오르는 게 미련인지, 아니면 그냥 혼자인 게 외로운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커피가 다 식도록 앉아 있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머릿속에 남은 얼굴은 결국 하나뿐이었습니다. 돌아와서 재회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감정에 휩쓸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 전에, 이게 대체 무슨 마음인지부터 냉정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당신이 그 사람을 떠올리는 건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때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밀어낸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9월로 넘어가면서 그 사람과 다시 얘기 나눌 계기가 생길 수 있으니, 그때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담담하게 마주하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달 초에 공동으로 얽힌 일 때문에 그 사람과 연락할 일이 생겼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시기와 맞물리니 마음이 서늘했습니다. 결혼도 이혼도 결국 제가 내린 결정이었는데, 돌아보면 둘 다 감정에 떠밀려 서둘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마음이 그리움인지 외로움인지도 모른 채 그 사람에게 달려갔다가는, 또 세 번째 후회를 만들 게 뻔했으니까요. 선생님이 지금 올라오는 이 감정이 외로움이 아니라 그때 제대로 닫지 못한 문 때문이라고 짚어 주신 순간, 막연하던 안개가 걷혔습니다. 감정에 이름이 붙자, 그 감정은 더 이상 저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제가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리움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그때 우리가 왜 서로를 놓았는지부터 차분히 확인하려 합니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그게 나약함의 증거인 줄 알고 애써 지우려 했습니다. 정리된 척하는 게 강한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지우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 얼굴 앞에서, 사실 저는 한 번도 제대로 이별을 정리한 적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이 밀어낸 감정이 남아 있는 거라고 짚어 주신 뒤로는, 그 감정을 억지로 지우는 대신 왜 남았는지를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도망치는 것보다 마주 앉는 편이 결국 더 빨리 자유로워지는 길이더군요. 아직 재결합을 결정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저는 한결 차분해졌습니다. 여행 내내 저를 무겁게 짓누르던 그 감정이, 정체를 알고 나니 이상하게 다루기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이름을 몰라 무섭던 것이, 이름을 아니까 그냥 하나의 감정이 되었습니다. 막연한 그리움에 휘둘리는 대신, 그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방향이 생겼으니까요. 정리하든 다시 만나든, 이번엔 감정에 밀려서가 아니라 눈을 뜨고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도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