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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23살 여자예요. 이런 후기를 쓸 나이가 맞나 싶기도 한데 솔직하게 적어볼게요. 대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마주치던 남자가 있었어요. 고시 스터디룸 같은 층을 쓰는데 저는 로스쿨 준비, 그쪽은 회계사 준비. 복도 정수기 앞에서 눈인사 하다가 어느 날 '물 자주 드시네요 ㅋㅋ'라고 제가 먼저 말을 걸었어요. 그게 6개월 전이에요. 지금은 점심을 같이 먹고 공부 끝나면 같이 걸어 나와요. 손은 안 잡았는데 어깨가 스칠 때 둘 다 피하지 않아요.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그냥 고백해'라고 하는데 저도 그쪽도 시험이 코앞이잖아요. 고백했다가 감정이 복잡해지면 공부가 안 될까봐 둘 다 입을 다물고 있는 거예요. 근데 이 상태가 오히려 공부를 방해하더라고요. 카페에서 기출 풀다가도 그 사람이 보낸 '오늘 몇 시에 끝나요?' 카톡 하나에 집중력이 와장창 무너지고. 이러다 시험도 망하고 이 사람도 놓치면 어떡하지 싶어서 박도사 신청했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보시더니 '시험장에서 만난 인연은 시험이 끝나야 피는 게 아니라 시험을 함께 버티는 과정이 이 관계의 뿌리가 되는 구조'라고 하셨어요. 즉 지금 이 어정쩡한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나중에 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기반이래요. 그리고 '이 두 사람은 감정을 꺼내는 타이밍이 거의 동시에 오는 궁합'이라서 한쪽이 먼저 용기를 내면 다른 쪽도 거의 바로 따라온다고요. 8월 시험 시즌이 끝나는 즈음에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될 기운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전까지는 지금처럼 '가장 가까운 타인'의 거리를 유지하라고요. 읽고 나서 마음이 진짜 편해졌어요. 조급하게 결론 내려고 안 해도 되는 거구나. 이 어정쩡함이 우리한테 필요한 시간이구나. 어제 그 사람이 '시험 끝나면 제주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저한테 말한 건지 혼잣말인지 모르겠어요. 근데 저도 '좋겠다'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아무 말 안 하더라고요 ㅋㅋ 8월이 기대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