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년 차, 서른아홉 살입니다.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신혼 때부터 준비했는데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어요. 병원에 가니까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그 말이 더 스트레스였어요. 생리일이 다가올 때마다 이번에는 제발, 하면서 기도했는데 생리를 시작할 때마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어요. 매달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의 사이클이 저를 갉아먹었어요. 임신 테스트기를 볼 때마다 손이 떨렸어요. 한 줄이 뜰 때의 공허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거예요. 한 줄의 빨간 선이 내 인생을 부정하는 것 같았어요.
자연임신을 포기하고 시험관에 들어갔어요. 매일 배에 주사를 맞으면서 출근했어요. 주사 자국이 멍이 져도 아무한테도 말 못 했어요. 회사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화장실에서 몰래 주사를 맞고, 멍든 배를 옷으로 가리고, 회의 중에 하복부가 땅기는 걸 참으면서 아무 일 없는 척 일했어요. 직장 동료가 "요즘 얼굴이 안 좋아 보여, 괜찮아?" 물으면 "어, 좀 피곤해서" 하고 웃어 넘겼어요. 그 웃음 뒤에서 배가 욱신거리고 있었는데. 첫 번째 시도 실패. 의사가 "이번에는 안 됐습니다" 할 때 진료실에서 남편 손을 잡고 울었어요. 괜찮아 다음에 하면 되지, 남편이 위로했어요. 그 위로가 따뜻하면서도 잔인했어요. '다음'이라는 말이 또 한 번의 주사와 기다림과 절망을 의미한다는 걸 아니까요.
두 번째 시도. 이번에는 착상까지 됐어요.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남편이랑 껴안고 울었어요. 태명도 지었어요. '콩이'라고. 퇴근하면서 아기 옷이 걸려있는 매장 앞을 지나갈 때 처음으로 멈춰 서서 들여다봤어요. 작은 양말, 작은 모자. 이걸 우리 아기한테 입히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길거리에서 눈물이 났어요. 기쁜 눈물이었어요. 그런데 6주째에 심장 소리가 안 들린다고. 계류유산이래요. 진료실에서 의사의 입이 움직이는 게 보이는데 소리가 안 들렸어요. 모니터 속의 까만 동그라미만 뚫어져라 봤어요. 거기에 콩이가 있었는데. 수술 후에 일주일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어요. 음식도 못 먹고 말도 안 하고 그냥 천장만 봤어요. 침대 옆 서랍에 넣어둔 아기 양말을 꺼내서 손에 쥐고 잤어요. 미리 사둔 건 이것 하나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주인을 잃었어요.
세 번째 시도도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는 울지도 않았어요. 눈물이 마른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운전하고 있는데 저는 창밖만 봤어요.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멍하니 보면서 '나는 엄마가 될 수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서 안 지워졌어요. 집에 도착해서 차 문을 열 때 남편이 뭔가 말했는데 기억이 안 나요. 그냥 현관문을 열고 신발도 안 벗고 소파에 쓰러져서 몇 시간을 그대로 있었어요.
남편은 처음에는 위로해줬어요. 괜찮아, 우리 둘이 살아도 행복해, 입양도 생각해보자. 남편 입장에서는 제 건강이 걱정되니까 하는 말인 걸 머리로는 알아요. 그런데 가슴은 달랐어요. 포기하라는 말로 들렸어요. 내 몸이 고장 났다는 걸 인정하라는 것 같았어요. 세 번 다 제 배에 주사를 맞았고 제 몸에 약을 넣었고 제가 수술대에 누운 건데, 그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이 '그만하자'고 말하는 게 공평하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때부터 남편한테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TV 보면서 웃고 있으면 화가 났어요. 나는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당신은 웃을 수 있구나. 불공평하다고 느꼈어요.
시어머니 쪽 압박도 있었어요. 직접 뭐라고 하시진 않지만요. 명절에 시누이 아이를 안으면서 "우리 집에도 이런 웃음소리가 들렸으면" 하시는 말에 밥이 목에 걸렸어요. 돌잔치에 가면 아이 안아보라고 건네주는데, 안는 순간 눈물이 올라올까 봐 겁났어요. 남편은 엄마 말은 그냥 넘기라고 하는데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한테는 비수가 꽂히는데 당신은 관중석이잖아. 친구들 아기 백일 사진이 SNS에 올라올 때마다 폰을 꺼버렸어요. 축하해야 하는 건 아는데 그게 안 됐어요. 그런 자신이 또 밉고.
상담을 신청한 건 남편과 점점 멀어지는 게 느껴져서였어요. 아이 문제로 시작된 갈등이 일상의 모든 부분으로 번졌어요. 식사 때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니까 밥을 같이 안 먹게 됐고,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나고 다른 시간에 자게 됐어요. 같은 집에 사는데 룸메이트처럼. 서로 사랑하는 건 확실한데 아이라는 주제만 나오면 전쟁이 되니까 점점 대화 자체를 피하게 되더라고요. 주말에 남편이 거실에 있으면 저는 방에 있고, 제가 부엌에 있으면 남편은 서재에 있고. 좁은 아파트에서 서로를 피해 다니는 게 코미디 같으면서 비극이었어요.
선생님이 제 사주를 보시더니 모성의 기운이 아주 강한 구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거라고요. 그리고 남편 사주를 보시면서 이 사람이 포기하자고 하는 건 진짜 포기가 아니라, 제가 무너지는 걸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마음이라고 하셨어요.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속마음은 지금도 저를 지키고 싶어하는 거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게 떠올랐어요. 두 번째 시험관 실패 후에 새벽에 물 마시러 나갔다가 남편이 거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저한테는 괜찮다고, 다음에 하면 된다고 말하던 사람이 혼자 있을 때는 울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내 슬픔에만 빠져서 남편도 같이 아프다는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그 새벽의 남편 뒷모습이 다시 보였어요. 구부린 어깨,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죽여 우는 모습. 그 사람도 아빠가 되고 싶었구나. 그것도 못 되게 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찢어졌어요.
선생님은 임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어요. 내년 상반기에 건강운이 회복되는 시기가 보이니까 올해는 무리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라고요. 부부가 함께 쉬는 시간을 갖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그리고 핵심적인 말씀. 부부 사이의 갈등은 아이 문제를 일단 내려놓으면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상담 받고 나서 남편과 오랜만에 마주 앉아서 울면서 이야기했어요. 서로 힘들었다고, 미안하다고. 아이 얘기는 잠시 멈추고 우리 둘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자고 합의했어요. 남편이 제 손을 잡으면서 "너 없으면 아이도 의미 없어" 라고 했을 때 3년 동안 응축됐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졌어요. 남편도 울었어요. 두 사람이 거실 바닥에 앉아서 서로를 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지나가고, 시계는 자정을 넘기고 있었는데, 우리는 3년 동안 못 한 대화를 그 밤에 다 했어요. 남편이 시험관 실패할 때마다 자기도 아빠가 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렸다고, 위로가 아니라 같이 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다음 달에 제주도 여행을 예약했어요. 부부로서, 연인으로서 우리를 다시 만나러 가는 여행이에요. 아기 양말은 서랍 깊숙이 넣어뒀어요. 버리지는 못하겠지만 매일 꺼내보는 건 멈추기로 했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상담이 없었으면 이 대화가 시작되지도 못했을 거예요. 콩이에게도 미안하고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도 미안한 시간이었는데, 이제 그 미안함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